라디오 PD로 일하는 진예정(31)씨 집에는 매일 8개 신문이 배달된다. 주 6일 발간되는 일간지들을 꼼꼼히 읽고 스크랩하는 게 주요 일과다. 흥미로운 기사엔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간단한 생각을 담아 선문답을 덧붙인다. 각 신문의 헤드라인만 한군데 모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6DP(6days.paper)’에 올린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burnout)’이 스크랩의 계기였다. 대학 시절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찾았던 신문이 떠올랐고, ‘읽는 김에 신문을 읽고 흥미로웠던 기사를 주변에 공유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가 공유하는 기사는 산업 재해에 대한 내용에서부터 최근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조해진 인터뷰, 지면 한 귀퉁이에 있는 시구(詩句), 강아지를 찍은 사진 기사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5월 개설된 이 계정의 팔로어 수는 2만7000여 명. 젊은 층은 종이 신문과 친하지 않다는 세간의 통념과 다르게 이 계정을 구독하는 80.4%가 18~34세다. 화려한 볼거리 넘쳐나는 시대에 이들은 왜 종이신문에 매료됐을까.
“신문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지식 얻어”
진씨는 “신문에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새로운 뉴스와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뉴스를 소비할 경우 이미 내가 알고 있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서 찾는 것이라, 원래 알던 것을 더 자세히 알게 되는 식인데, 종이신문은 쫙 펼쳤을 때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뉴스와 키워드를 접할 수 있다. 신문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지식을 새롭게 얻는다”고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들도 마찬가지. “이 계정 덕분에 신문을 구독하게 됐다”는 이들은 “세상에는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와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됐다”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프리랜서 이모(28)씨도 종이신문을 읽고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기사들을 공유한다. 이씨는 “신문 기사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부동산이 공식적으로는 23평 아파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큰 지면에 자잘하고도 다양한 기사들이 실리다 보니, 뜻밖의 상식과 재미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온라인 기사들이 난무하는 시대, 종이신문을 통해서 정제된 정보를 찾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2021 신문을 말하다’에 따르면 “종이신문 이용자들은 선별성·심층성·신뢰성 또는 편집과 레이아웃의 힘처럼 상대적으로 ‘고전적인’ 뉴스 가치를 종이신문에 요구한다”고 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윤모(31)씨는 신문을 구독한 지 7년째다. “온라인 기사는 조회수 중심으로 노출 빈도가 결정되니,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흥미를 끌기 어려운 주제들이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낮다”며 “편파적이거나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기사들을 걸러내는 것이 종이신문의 장점”이라고 했다.
“미니 역사책 같은 존재”
활자로 된 매체 중 신문을 선택하는 이유도 있다. 진씨는 “결국 신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책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이야기를 한다면, 신문은 그날그날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나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질감도 그가 신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6DP 계정이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요소는 ‘1면 모아보기’다. 한 주간 8개 일간지의 1면들만 모아 찍어 올린다. 이를 두고 진씨는 “신문은 꼭 마이크로 미니 역사책 같다”고 한다. 신문 1면엔 각 언론사가 판단한 그날의 가장 큰 이슈가 담긴다. 같은 뉴스를 언론사별로 헤드라인과 사진을 어떻게 다르게 편집하는지 관찰하는 것도 그에겐 쏠쏠한 재미. 주말이면 어느새 ‘역사’가 되어버린 지난주의 1면들을 다시 톺아본다.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디지털 미디어를 중심으로 뉴스 소비가 늘어나는 가운데, 자극적인 정보와 가짜 뉴스에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정제된 정보를 주는 레거시(정통) 미디어로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