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나요?”

구독자 32만에 달하는, ‘젊은 시각’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서른 살 청년 송규호를 만났을 때 했던 한 질문이다. 오랜 기간 몸 담았던 좌파에 진저리치다 오십이 넘어 진영을 갈아탄 나로서는, 일찍부터 보수를 택한 그의 비결이 궁금했다. “딱히 보수다, 진보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보수가 됐어요.” ‘자연스럽게’라는 단어가 가슴에 박혔고, 그런 선택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20대 시절, 내 주변은 다 ‘진보’였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때였지만, 보수로 분류됐던 당시 집권 층을 지지하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정권 장악을 위해 훗날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될 끔찍한 일을 벌였고, 그 후에도 쭉 민주주의를 유린한 세력을 어떻게 편들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진보’가 됐다.

DJ냐 YS냐를 놓고 싸웠을지언정, 보수 후보를 좋아하는 이는 드물었다. 설령 보수 지지자가 주변에 있다 해도, 남들 시선이 두려워 그 사실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지만, 보수는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었다. 당시 보수는 IMF 사태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길 정도로 뻔뻔했고, 정책 대결 대신 빨갱이 몰이에만 전념할 만큼 철학적으로도 빈곤했다. 2004년 보수가 벌인 대통령 탄핵 사태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국회 의석 수가 많다는 걸 이용해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을 국민 의사에 반해 끌어내리려 했으니 말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오열하던 유시민의 모습은 나 같은 소시민을 각성시켰고, 우린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든 채 ‘탄핵 반대’를 외쳤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기성세대가 됐다. 몸으로 경험한 세상은 젊을 때 막연히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난했기에, 우린 그곳에서 살아남으려 세상과 적당히 타협했다. 학벌주의 철폐를 부르짖으며 자기 자식에게는 살인적인 학습량을 강요했고,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다 수도권의 목 좋은 곳에 집을 마련한 뒤 오르는 집값에 흐뭇해했다. 정치인의 뇌물 사건을 거품 물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더 나은 입지를 위해 상납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깨어있는 민중을 입에 달고 살지만 현실에선 돈 많고 권력 있는 이들과 친분을 쌓으려 애썼다.

앎과 삶의 괴리가 가끔씩 우리를 짓눌렀지만,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여럿 있었다. 가장 쉬운 게 삶은 보수처럼 살더라도 선거 때만큼은 진보에게 표를 주는 일, 세상은 이런 이들을 ‘강남 좌파’라 부르며 찬양했다. 민주당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땐 좌파 인플루언서가 하달하는 복음을 들으면 됐다. 그들은 유시민의 책을 사고 김어준의 방송을 들었으며, 조국의 현란한 SNS 게시물을 팔로잉 했다. 현란한 말솜씨로 보수를 공격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좌파를 선택하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들의 말로도 마음이 허하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상적 스승인 신영복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라며 지식노동을 경시하고 노동자의 삶을 찬양함으로써 수많은 대졸자들을 공장으로 향하게 했던 신영복은 출소 이후 평생 글을 쓰며 살았다… ‘더불어숲’을 쓸 때는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썼다. 그의 사상에 경도된 청년들은 해외여행은 매국적 행위라고 생각하며 공장에서 선반을 돌리고 있을 때 말이다. -책 <신영복을 존경하세요?> 중에서

2019년 터진 조국 사태는 그들의 정신 승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온갖 깨끗한 척은 다 하던 조국이 자기 자식들에게 허위 스펙을 만들어 준 입시 비리범인 게 드러났잖은가. 게다가 김어준은 그런 조국에게 잘못이 없다며 ‘이 모든 게 검찰의 음모’라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고, 유시민은 정경심이 학교 컴퓨터를 가져가 증거를 인멸하려 한 행위를 ‘증거 보전’이라며 옹호함으로써 ‘뇌썩남’이 됐다.

진보를 추앙하며 살던 그들이 택할 길은 둘 중 하나였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조국을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진보의 구성에 일조하는 게 그 하나라면, 가슴의 명령대로 ‘우리 조국님이 그럴 리 없다’며 진보 정권을 편드는 게 두 번째 길이었다. 김경율 회계사처럼 첫 번째를 택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40~50대는 조국을 지키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라고 문서 위조나 허위 스펙, 사모펀드 관련 범죄가 나쁘다는 걸 모르진 않았겠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그간 믿어온 진보의 가치가 무위로 돌아간다. 그러니 범죄 수사를 하는 검찰을 ‘악’으로 돌리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 그다음 단추를 잘 끼울 수는 없는 노릇. 그 뒤 민주당은, 그리고 좌파들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이미 전과 4범에, 가까운 시일 내 전과 10범이 예상되는 이를 대선 후보로 선출함으로써 정권을 내줬다. 어디 그뿐인가. 그를 당대표로 뽑은 뒤 그에 대한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 거품을 물고, 한편으론 일 열심히 하는 대통령을 탄핵시키겠다며 난리를 피운다. 그들에게 윤석열 정부는 광주에서 사람들을 죽이던 ‘신군부’니까. 김의겸 의원이 사이버래커인 ‘더 탐사’와 협업해 법무장관에게 허황된 의혹을 제기하고, 장경태 최고위원이 선동과 왜곡으로 영부인을 공격해도, 40대의 71.8%와 50대의 67.6%는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이런 광경을 보며 자란 송규호가 보수의 길을 택한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물론 모든 청년이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들의 부모인 40~50대가 일찍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했을 테고, 말을 듣지 않으면 용돈을 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현 정권에 대한 20대의 낮은 지지율은 그 징표일 터. 그래서 걱정이다. 지금 40~50대는 나이가 든다 해도 진영을 바꾸지 않을 텐데, 보수의 지킴이라 할 지금의 노년층이 과연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을까. 그때의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있을까. 현 정권에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