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겨울왕국’에 나오는 노래 가사, ‘Let It Go’를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했지?”라고 묻자, 아내가 답했다. “그건 그냥 ‘렛잇고’라고 했을 거야.”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내 말이 맞았다. 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달 한국에서는 수능이 치러졌다. 우리 집에도 수험생이 한 명 살고 있다. 만 17세 아들 데이비드다. 대학교 두 군데의 입학 원서 마감이 2주도 남지 않은 오늘, 아들은 근처 친구의 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 세 명과 놀고, 하룻 밤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오신단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도 친구들과 영화를 봤고, 그다음 날도 하루 종일 놀았는데, 이번엔 슬립오버(Sleep Over)까지 하신다니. 한국 수험생이라면 상상도 못 할 여유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12일 동안 대학교들이 원하는 에세이 6개를 완성해야 하고, 짧은 질문에 대한 답 작성을 적어도 10개는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학교 공부를 동시에 하면서. 아, 답답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아들은 틀림없이 제 시간에 입학 원서들을 제출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마감 일주일 전에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마감 몇 시간 전까지는 해야 할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착잡할까?
3년 전부터 나는 대입을 앞둔 학생들이 지원할 대학교 리스트들을 정리하고, 학교들이 요구하는 에세이 쓰는 것을 도와주고, 작성한 원서를 최종 제출하기 직전에 다시 한번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 등을 해왔다. 처음은 딸 예진이와 함께했다. 2년 전부터는 지인의 자녀들이 쓴 에세이를 봐주는 일을 했는데, 드디어 올해 내 아들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달라 내게 버거웠다.
미국 대학교들은 지원자들을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본다. 고등학교 성적, 선생님들의 추천서, 학업 외 활동, SAT나 ACT와 같은 대입 고사 성적, 개인적인 성향 (예를 들면 인격, 창의력) 등. 특히 합격률이 낮고 경쟁률이 높은 학교들은 지적 호기심과 창조력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즉 그저 대학교가 고등학교 다음으로 진학할 차례라서 응시하는 학생들보다는, 특별히 더 연구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지적 흥미나 실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각 대학교가 요구하는 에세이 주제에 맞춰 글을 잘 써야 한다. 기억에 남는 에세이를 써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게다가 대입 고사 결과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거나 아예 검토하지 않는 학교들이 늘면서 에세이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지원자들에게 요구하는 에세이 주제가 추상적인 주제에서 구체적인 상황에 창의력을 요구하는 주제들로 변했다. ‘본인이 살면서 겪은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나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 대한 질문보다는 ‘100만명의 군중 앞에서 10분 동안 연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에 대해서 하고 싶은지’ 같은 질문이 요즘의 출제 트렌드다. 결국 12학년이 되는 해 몇 달 동안 해야 하는 대입 준비에서 가장 어렵고 중대한 과제는 에세이 쓰기다.
예진이를 포함해 내가 도와준 다른 아이들은 나의 에세이 편집 제안을 별말 없이 잘 받아들였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단어 하나하나, 스타일에 관한 제안, 에세이 토픽 선택까지도 언쟁을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아빠, 그 건 쉰 살 넘은 사람이 하는 말 같아.” “나는 그렇게 표현하기 싫어.” “무슨 말이야? 아빠는 나를,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결국, 아들의 에세이 편집을 도와주는 시간은 논쟁을 열렬히 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혼자 다시 읽어보고 스스로 편집하라고 하면 그건 또 싫단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원!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아직도 아들 방에 가서, 알람 소리와 함께 아이를 깨우곤 한다. 또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9학년 때부터 꾸준히 해온 로보틱스 클럽의 코치가 그만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로봇 만드는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클럽의 코치가 되어주기로 했다. 다른 아빠들은 스포츠 팀 코치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학업 외 활동에 열심히 쫓아다니지만, 나는 여태 그런 방법으로 아이를 지원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가기 전 한 번이라도 비슷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상상도 못했던 로보틱스 코치가 된 것이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아들이 깨기를 기다리면서, 이 일도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으로 떠나는 자녀들이 부모와 같이 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한국보다 적은 것 같다. 올해 대학 3학년인 예진이는 집으로 꼭 돌아올 거라고 엄마에게 말하곤 한단다. 듣기 좋은 말을 그냥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예진이는 우리 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아이라고 본다. 하지만 부모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많이 못한다고 믿고 서슴없이 그걸 표현하는 데이비드는 졸업 후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부모 때문에 뭘 못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다. 나에게 데이비드는 아직도 아이인 것이다. 분만실에서 처음 만져봤던 아들. 내가 좋아서 품에 안아 잠을 재우곤 했던 아기. 키가 거의 180㎝인 그가 아직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몇 달 후 그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이 싫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부모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자녀가 부모 없이 홀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 면에서 데이비드는 그런 준비가 나이에 비해 잘된 아이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해 온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섭섭하기도 하다. 이젠 아이를 놓아줄 때다. Time to let him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