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30개월 아들에게 집에서 처음 맡은 ‘일’이 생겼다. 문 밖 신문을 안으로 들여놓는 일. 어린이집 가려고 집을 나서면 신문이 있는데 그걸 안쪽으로 옮기는 역사적 임무다. 처음엔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한 것뿐인데 “민우야, 네가 해봐”라고 한 이후로는 자기 몫인 줄 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툼한 신문을 집어 드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 “아이고 잘한다!” 칭찬해주면 배시시 웃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녀석이 보름 전 사고를 당했다. 밤새 글 쓰고, 새벽에 편의점에 나가 오후까지 일하고 돌아와 깜빡 잠이 든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 민우가….” 아내 목소리에는 비명과 흐느낌이 절반 섞여 있었다. 옷도 걸치지 않고 뛰어나갔더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고 아들은 축 처져 엄마에게 안겨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트럭에 치인 것이다. 곧장 경찰이 달려왔다. 아이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그 뒤로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 일들을 치렀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는 내내 아이는 안겨 잠만 잤고, 도착해 일어서보라 했더니 울며 쓰러졌다. 바지를 벗겨보고야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허벅지 쪽으로 뭔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 시뻘건 것이다. 엑스레이와 뇌 CT를 찍고,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이 나는 수천 번도 더 나 자신을 책망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임무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이나 아내가 데려오는데 하필 그때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오후 4시 알람에 벌떡 일어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절반쯤 깨어났으면서도 ‘아내가 데려오겠지’ 하면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 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인과관계를 따지며 모든 걸 원망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왜 밤새 글을 쓴 것일까. 왜 하필 그때 그 직원은 코로나19에 걸려 내가 새벽 근무를 대신한 것일까. 새벽 근무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1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 올 때, 단지 안을 돌아다니는 택배 트럭을 보고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다. 그때 누가 “그래도 여기가 제일 낫다” 주장했더라?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며 다른 아이에게 잠깐 눈길을 준 사이 트럭이 덮쳤다고 흐느꼈다. “아냐. 당신 잘못 아냐. 누구 잘못도 아니니까, 일단 아이가 무사하도록 하늘에 기도만 하자.” 다행히 의사가 ‘기적’이라 표현할 정도로 아이는 골절이 없었고 심한 찰과상만 입었다. “트럭에 깔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네요. 하늘이 도운 겁니다.”
하루 지나, 경찰관 입회 아래 아파트 CCTV를 확인했다. 경찰관이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사고 장면은 끔찍했다. 택배 트럭은 곡선 보행로에서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고, 아이를 치고 나서 또 전진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늘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이젠 택배 기사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보험사에 일임했다지만 그는 송구하다는 문자 메시지 하나 없었다. 사고 당일 구급차를 기다리던 동안에도 어딘가로 전화해 자기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떨린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세 아이 엄마라더니, 과연 맞나?
사람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자 말해 왔건만, 그 일이 막상 내 일이 되었을 때는 ‘노력’조차 되지 않더라.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자꾸 머리를 맴돌고, ‘~만 아니었으면’ 하는 통회(痛悔)가 가슴을 꽉 조여온다. 내 뺨을 때리고 싶고, 달려가 뺨을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꾹꾹 눌러 울음을 참으며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이성을 잃으면 모두가 흔들린다.
경과를 말하자면 나흘쯤 지나 아이는 절룩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의사가 “아이들의 회복력은 역시 경이롭습니다” 말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열흘 지나니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렇게 자동차를 좋아해 벤치에 앉아 한없이 자동차만 구경하던 녀석이 이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표정이 굳는다. 생후 30개월짜리 눈망울에 비친 슬픔을 읽으며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일까. 다음 날 천천히 산책했다. 이번엔 사고가 일어난 놀이터 근처로 가려 하지 않는다. 아이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구나. 말이 늦어 아직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녀석이 속으로 앓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니 다시 울고만 싶다.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났다. 병원에 가려 현관문을 열고 나섰더니 아이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신문, 신문을 찾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아내랑 나는 말없이 그냥 흐느꼈다. 살아있게 해주심에 감사했다. 산 자는 살아갈 것이고, 우리는 이 아파트를 떠날 것이다. 비슷한 처지를 겪는, 겪은, 많은 이의 심정이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이해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에 읽은 신문이라도 이젠 문 앞에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