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선 해마다 11월이 되면 붉은색 양귀비꽃(poppy) 물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설치되기 전의 길거리, 상점, 학교 등 영국 전역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배지, 팔찌, 열쇠고리 등의 소품들부터 화환, 설치물까지 다양한 모습의 양귀비 모티프를 접할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귀비 브로치를 단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더러는 차에 장식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2파운드의 기부금을 학교에 가져가 이 포피를 받아서 가방에 매달고 옵니다.
붉은 양귀비는 영국 왕립 군단(royal British Legion)이 제작하고 판매하는데요, 전쟁으로 희생된 병사들의 고통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전장에 다시 나타난 첫 번째 식물이 바로 이 붉은 양귀비였는데, 친구를 전쟁으로 잃은 존 매크레이가 이 광경을 시(詩)로 노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21년 영국 왕립 군단에서 재향군인들을 돕기 위해 판매한 양귀비 장식 800만개가 매진된 것을 시작으로 포피 판매를 통한 모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국의 군단 지부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영국과 관련된 모든 전쟁으로 영향을 받은 군인들, 여성들, 가족들을 돕기 위해 모금액을 사용합니다. 지난해 포피 판매로 인한 수익금은 2500가정의 재정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1914년에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끝났습니다. 이에 영국은 11월 11일을 현충일(Remembrance Day)로 지정해 매년 기리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부터 현재까지 현역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수백만 명과, 분쟁과 테러 행위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기리는 날로, 1919년 11월 11일 조지 5세가 ‘영광스럽게 죽은 이들에 대해 경건한 기억에 집중하도록’ 2분간 묵념해 줄 것을 권고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충일의 일요일에는 전국 전역에서 참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와 행사가 열립니다. 학교와 방송가, 길거리는 이 기간 추모하는 분위기에 휩싸이지요. 태어난 지 9주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빠를 잃고 현재 13세가 된 영국 소년 벤 오도넬은 현충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충일은 저에게 아주 큰 의미입니다. 저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으로 아빠를 느낄 수 있거든요.”
런던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은 현충일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수많은 런던 관광객이 찾는 곳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덤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무명의 군인들이 훈장과 함께 안치되어 있습니다. 시내 중심가인 하이드파크 코너, 홀본의 하이스트리트 등 런던의 가장 바쁘고 붐비는 대표적인 장소에는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다양한 조각, 비석, 기념관 등이 설치되어 있지요. 런던 웨스트민스터시 템스강 변 국방부 옆에는 런던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기념물에는 언제나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포피들이 가득합니다. 런던 시민들은 지금 우리가 이 번화한 도시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 피어난 것인지를 매일같이 확인합니다.
이렇게 영국 사회가 지난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이유는 바로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은 기억이 국가 공동체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회가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는 방법은 그들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데 본질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과거를 기억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과거에 관련된 축하, 추모 등과 같은 활동을 포함하여 현대사회에 보관된다”고 말했습니다. BBC 사장인 팀 데이비(Tim Davie)는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은 과거와 현재의 군대 구성원을 존중하고 궁극적인 희생을 한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며,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여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얼마 전 지역 학교의 교문에 설치된 커다란 조각을 보았습니다. 군인 모습을 한 실물 크기의 조각이었지요. 철모를 쓰고 고개를 숙인 가슴팍엔 붉은 포피가 매달려 있었고, 군인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부근에서, 나는 살아있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Near this place, I lived and was loved).’ 등·하굣길에 멈춰서 문구를 읽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군인의 키가 꼭 그 학생들 만하더군요. 분명 이 아이들만큼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겠지요.
붉은 양귀비를 군인들의 희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한 존 매크레이의 시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흔들리네. 우리가 누운 곳을 알려주는 십자가들 줄줄이 서 있는 사이로 하늘에는 종달새가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땅에선 포성에 그 노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죽은 자들. 며칠 전 우리는 살았고, 새벽을 느꼈고, 석양이 빛나는 것을 보았고, 사랑을 했고 사랑받았건만 이제 우리는 플랑드르 들판에 누워 있네.’
자유와 평화의 땅을 지켜낸 모든 용감한 분께 감사와 경의의 마음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