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전북 익산 농협 앞에 100여 명이 길게 줄 서 있다. 생크림 찹쌀떡을 사기 위해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미륵사지 석탑을 뒤이을 후계자가 익산에 등장했다. 지난 22일 오전 7시 50분.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전북 익산 농협 주변엔 긴 인파가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맨 앞에 서 있던 이정민(27)씨는 전날 밤 11시부터 이곳에 텐트를 쳐놓고 기다렸다. 이씨는 “오전 8시 30분부터 농협에서 판매하는 ‘생크림 찹쌀떡’을 구매하기 위해 전북 장수군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왔다”며 “지난번 구매했을 때 가족들이 다들 너무 맛있다고 해서 또 왔다. 대기 중간에 텐트를 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아예 일찍 왔다”고 했다. 구매자들끼리 찹쌀떡 정보를 주고받는 ‘오픈 채팅방’도 3개 있다. 채팅 정원 1500명이 꽉 찼다. 이날은 기존 생크림·흑임자에 이어 초콜릿 맛이 새롭게 출시되는 날. 채팅방에선 몇 명이나 줄을 서 있는지, 새로 나온 떡 맛은 어떨지 등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갔다.

‘미륵사지의 도시’ 익산이 찹쌀떡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 7월 익산 농협이 쌀 소비 촉진 등을 위해 출시한 ‘찹쌀떡’ 덕분. 백화점 오픈런 대신 ‘농협런’ 하게 만든 주역을 <아무튼, 주말>이 찾아가봤다.

◇백화점 오픈런 대신 ‘농협런’

이날 둘째로 줄을 선 대학생 이경호(21)씨는 새벽 1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전북 완주에 사는 이씨는 친구 2명과 함께 마트 앞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침낭 안에서 잠을 잤다. 이씨는 “지난번 조금 늦게 왔더니 원하는 맛이 떨어졌더라”며 “백화점 오픈런은 못해봤어도, 농협런은 성공했다”고 웃었다.

농협 직원이라도 줄서기에 예외는 없다. 이날 다른 고객과 똑같이 줄서서 구매에 성공한 농협 노정란 상무는 “주변에서 찹쌀떡 맛볼 수 없느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직원이라도 따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오늘 구매해서 나도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날 준비된 수량은 1인당 3팩으로 구매를 제한했음에도 10분 만에 다 팔렸다. 다른 판매처인 익산 모현동 하나로마트와 파머스 마켓도 비슷한 상황. 하루에 1200팩씩 내놓는데도 물량이 부족해, 농협 측은 생산 설비를 늘릴 계획이다.

익산 농협에서 파는 초콜릿·흑임자·생크림 찹쌀떡.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농가 쌀 소비 촉진 위해 시작

익산농협은 2017년 갈수록 줄어드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익산 농협 떡 방앗간’을 열었다. 처음엔 송편, 팥떡과 같은 전통 떡을 판매했으나, 실적이 저조했다. 젊은 사람이 빵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떡을 만들자고 해서 올 7월 내놓은 것이 ‘생크림 찹쌀떡’이다. 1팩에 냉동 상태로 낱개 포장된 떡 12개가 들었다. 보관이 어렵고 유통기한이 짧은 떡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10분 정도 자연 해동해서 먹으면 가장 맛있다. 최근엔 흑임자·초콜릿 맛까지 추가됐다.

익산 농협 김병옥 조합장은 “쌀은 도정한 지 15일이 지나지 않아야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 차지고 맛있다고들 하는데, 익산에는 전북에서 가장 큰 도정 공장이 있어 도정 후 곧바로 떡을 만들 수 있다”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실제 하루 최대 쌀 400kg을 쓰면서, 지역 농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흑임자 찹쌀떡에 들어가는 검은깨도 조합원들이 생산한 것. 김 조합장은 “정부가 나서 쌀을 매입해 창고에 쌓는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쌀이 갈 곳이 있어야 한다. 가공 상품을 통한 수익 창출로 힘든 농가를 돕고 싶다”고 했다. 익산 농협은 추후 녹차·쑥을 활용한 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일각에서 ‘내가 원조’ 주장도

최근엔 떡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레시피를 둘러싼 원조 논란도 일었다. 지난 21일 전주에서 10년간 떡을 만들었다는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다른 경로를 통해, 전 공장장이 익산농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며 자신이 해당 떡을 처음 만들었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농협 측은 “생크림 찹쌀떡은 이미 2004년 다른 분이 특허 등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정도로 원조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며 “해당 업체에서 말한 직원은 파트타임 근무자로 최근에 채용됐고, 기술 개발팀에선 일한 적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