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지난 2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프랑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상대팀 선수의 어깨에 부딪혀 왼쪽 눈 부위를 다친 뒤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카타르 월드컵이 9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축구 팬들의 맘은 편치 않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부상 소식 때문이죠. 손흥민은 지난 2일 프랑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경합하다 안면 골절을 입었습니다. 눈 주위 뼈가 네 군데나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이었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손흥민의 부상 소식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손흥민이 월드컵에서 뛰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삽시간에 퍼졌죠. 보통 눈 주위 뼈 골절은 완전히 회복되는 데 최소 8주가량 걸립니다. 다행히도 손흥민은 수술을 잘 받았고 최근에는 “월드컵에 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 상태로 경기에 나서려면 안면 보호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면 경기 중 시야가 가려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 추가 부상을 피하려면 공중볼 경합이나 몸싸움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일까요. 손흥민 부상 이후 각국 스포츠 매체와 전문가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날 선 비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FIFA가 카타르 월드컵을 11월에 개최하면서 각국의 스타 선수들이 가혹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부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축구 평론가 제이미 캐러거는 “손흥민처럼 당연히 월드컵에 뛰어야 하는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시기에 월드컵이 열리는 건 역겨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간 월드컵은 5월 말이나 6월에 시작됐습니다. 축구 중심지 유럽에서는 보통 시즌이 8월에 개막돼 이듬해 5월에 마무리되기 때문이죠. 통상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5월에 시즌을 끝내고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2~4주간 피로를 회복한 뒤 월드컵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11월에 열립니다. 여름철 낮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 중동 날씨 탓에 겨울 개최가 불가피했지요. 이렇다 보니 유럽 각국 리그들은 월드컵 기간에 열리지 못하는 경기를 미리 소화하기 위해 빡빡한 일정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손흥민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도 보통 일주일에 한 경기씩 치렀지만, 최근에는 3~4일에 한 경기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토트넘 홋스퍼 같은 상위권 클럽의 일정은 더 가혹합니다. 국내 컵 대회와 챔피언스리그까지 동시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토트넘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최근 “시즌 도중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격한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축구계에선 “이러다 수퍼스타들이 줄줄이 이탈해 김빠진 월드컵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한민국과 맞붙는 스타 군단 포르투갈도 이미 디오고 조타(리버풀), 황희찬의 팀 동료인 페드로 네투(울버햄튼) 등이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습니다. 우루과이도 핵심 수비수인 로날드 아라우호(바르셀로나)가 출전이 무산됐고, 베테랑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도 출전 여부가 불확실해졌습니다.

2018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는 얼마 전까지 카타르 월드컵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지금은 ‘불안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폴 포그바, 은골로 캉테 같은 핵심 미드필더가 일찍이 부상으로 월드컵이 무산된 데 이어 핵심 수비수인 라파엘 바란(맨유)마저 리그 경기 중 부상을 당해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기 때문이죠. 독일의 특급 골잡이 티모 베르너를 비롯해 잉글랜드의 벤 칠웰과 리스 제임스, 아르헨티나의 파울로 디발라와 로 셀소, 벨기에의 로멜루 루카쿠, 세네갈의 사디오 마네(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스타들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거나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제이미 캐러거는 “이 예견된 재앙들은 FIFA가 부패한 방법으로 카타르에 개최권을 주면서 시작됐다”고 꼬집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카타르 월드컵은 지난 2010년 개최지 확정 전후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잉글랜드, 미국, 호주 등이 개최 경쟁을 벌였지만 FIFA는 카타르의 손을 들어줬죠. 당시 “카타르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부당한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후 FIFA 내부 조사와 언론 등을 통해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언론은 당시 카타르 왕실과 블래터 회장은 카타르를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하는 대신 카타르가 차기 회장 선거에서 블래터와 경쟁하지 않기로 한 밀약을 맺었다고 폭로했습니다. FIFA 윤리위원회 조사에서는 카타르 측이 카리브해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의 고위 인사들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도 드러났지요. 블래터 회장은 결국 2015년 6월 FIFA 회장직 5연임을 확정한 지 4일 만에 돌연 사퇴합니다. 최근 블래터는 “카타르를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한 건 실수”였다며 뒤늦게 책임을 인정했죠.

준비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월드컵 경기장 건축 과정에서 인도, 네팔 등 남아시아 이주 노동자 6500여 명이 사망했고,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거나 임금 체납을 겪는 등 인권 탄압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런 숱한 논란에도 카타르 월드컵은 한국 시각으로 오는 21일 새벽 1시,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한 달여간의 대장정에 들어갑니다. 지난 10일 손흥민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여러분이 참고 견디며 써오신 마스크를 생각하면 월드컵 경기에서 쓰게 될 저의 (안면 보호용) 마스크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성공적으로 월드컵 무대를 소화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