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작지도 않은데 물건 들어갈 곳이 없다. 옷을 넣어둘 곳도 부족하고 신발장도 포화 상태다. 부엌의 모든 수납장은 그릇과 냄비와 컵으로 가득 차 있다. 수저를 비롯한 식기와 작은 조리 도구를 넣어둔 서랍은 여닫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정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장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거리는 책들로 어지럽다. 스트리밍으로 음악 듣는 시대에 CD로 가득 찬 공간은 음반의 카타콤처럼 보인다.

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사지 않는 것이 상지상책이지만 이미 산 것을 어쩌랴. 물론 가장 좋으려면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아 몇 푼이라도 챙겨야 한다. 그러려면 중고 시장에 하루 종일 붙들려 있어야 한다. 한 밑천 잡을 게 아니라면 그 방법도 정신 건강에 해롭다. 역시 버리는 게 제일이다.

그런데 버릴 수 없다. 너무 멀쩡하고 아직 쓸 만하며 심지어 새것이기 때문이다. 저게 얼마짜린데, 저건 (쓸 일이 없어서 그렇지) 무척 유용한 물건인데, 아주 어렵게 구한 건데 하는 생각 때문에 선뜻 서랍에서 찬장에서 옷장에서 꺼낼 수 없다. 오늘은 작심하고 정리해야지 한 뒤 고작 골라낸 게 여행 갔다가 사온 자잘한 기념품 몇 개와 언제 써도 쓰겠지 하고 처박아 둔 포장지 같은 것들이다. 태산이 쩌렁쩌렁 울리더니 쥐새끼 한 마리 쪼르르 나온 격이다.

물건들에 둘러싸여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물질에 현혹되어 마구잡이로 사 모은 뒤 물질에 갇히고 파묻히는 것 같다.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이 간혹 TV에 나온다.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한 살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함부로 물건을 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미니멀하게 살 수 없다. 물론 멀쩡한 물건을 버릴 때는 일종의 죄의식이 든다. 죄의식을 줄이려면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버려야 한다. 켜켜이 쌓인 물건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약간의 죄의식은 감수해야 한다.

살림 고수들은 버리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한다. 그중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원칙이 ‘1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려라’ ‘남을 의식해서 갖고 있는 건 버려라’ ‘유통 기한이 지난 건 버려라’ 같은 것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절반은 몰라도 3분의 1은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눈 질끈 감고 버려야겠다. 살림의 시작은 정리이고, 정리는 버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