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에 아늑한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레는 늦은 가을입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지요. 각종 소셜미디어와 영화, 유튜브와 스마트폰 OTT 시장이 날개를 단 채 활발한 세상이지만 영국인들은 여전히 책을 읽습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 유고브(YOUGOV)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 5명 중 2명(43%)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읽고, 35%는 여러 번 읽으며, 19%는 매일 읽는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출판사협회(Publishers Association)의 보고서는 2021년 영국 출판사 매출이 5% 증가하여 6억7000만파운드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소설·논픽션 등 각각의 분야가 성장한 데 따른 것이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린이 도서가 7% 증가해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아빠가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신시내티 아동 병원의 존 허턴 박사는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 옥시토신이 방출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영국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해리포터, 사자 마녀 옷장 등의 뛰어난 아동문학을 배출한 어린이 도서의 확실한 강국입니다. 모든 영국의 어린이는 영문학의 중요한 독자이지요. 독서는 영국 교육에서 단순한 교과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교육 가이드라인에서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영어, 특히 독서는 학생들에게 나머지 커리큘럼에 대한 액세스(접근)를 제공하며 교육 성공의 기본입니다. 문학을 공부함으로써 학생들의 눈은 인간의 경험에 개방됩니다. 그들은 의미와 모호성뿐만 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과 힘을 탐구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02년 “독서는 가정의 경제적 상황보다 어린이의 교육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클라크(Clark)와 럼볼드(Rumbold) 교수팀은 2006년 연구에서 “책을 읽는 것이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사회적 소외를 해결하는 가장 주요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지요. 비교적 이른 나이인 만 4세에 학교(리셉션)에 입학하는 영국 아이들이지만, 초기 교육의 대부분은 독서에 할애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받게 되는 숙제는 연령대, 읽기 수준에 맞는 책 한 권. 그리고 그 어린이가 학교를 졸업하는 18세가 될 때까지 꾸준히 이어가게 될 활동 역시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는 단지 교육적 효과뿐만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강조됩니다. 작년 내셔널 리터러시 트러스트(National Literacy Trust) 연구에 따르면 14 세가 되면 독서를 즐기는 어린이는 독서를 즐기지 않는 또래들보다 3.3세 앞선 독서 연령을 보였고, 평균 이상의 독서 능력을 가진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정신 건강이 좋을 가능성이 세 배 더 높았습니다. 또한 종단 연구센터(Center for Longitudinal Studies)는 즐거운 독서가 높은 학위를 소지한 부모보다 행복에 네 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명 어린이 출판사 스콜라스틱(Scholastic)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의 83%가 소리 내 책을 읽는 것이 즐겁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63%의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특별한 시간이라고 답했습니다. 응답자 중 1명인 11세 소년은 그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건 따뜻한 영혼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에요.”

책 읽어주는 시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신시내티 아동 병원의 독서 및 문맹 퇴치 디스커버리 센터의 책임자이며 미취학 아동의 뇌가 독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밝혀내기 위해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술)을 사용한 최초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존 허턴(John Hutton) 박사는 말합니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은 ‘교화’입니다. 그 강력한 공유 경험이 일어나는 동안 두뇌는 공동으로 신경 동기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높은 수준의 신경 동기화는 옥시토신의 방출을 가능하게 합니다. 옥시토신의 수치가 높을수록 따뜻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불안에 시달리는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앉아서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웃고, 껴안는 그 시간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시간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저희 집에도 그 마법 같은 시간은 찾아옵니다. 매일 저녁 설거지를 마친 차가운 손으로 침대에 올라가면 저희 아이들은 책을 들고서 따끈한 엉덩이를 바짝 붙이며 다가와 앉지요. 책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 금은보화, 온갖 귀중한 것들도 그 시간만큼 귀하지는 않을 거예요. 영국 작가 코트렐 보이스(Cottrell Boyce)는 취침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는 독서에 감정적인 깊이를 부여한다며,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따뜻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것은 부싯돌로 장작에 불을 붙이던 시절부터 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지금 그것을 멈추는 것은 우리 존재의 큰 사슬을 끊는 것입니다.”

문맹 퇴치 운동에 앞장서는 영국의 어린이 작가이자 코미디언 데이비드 왈리엄스(David Walliams)는 “좋은 책에 갇히는 기쁨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나는 그것을 모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가을엔 단풍도 좋고 가을볕도 좋고 저마다 귀하고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겠습니다만, 밖이 쌀쌀해서일까요. 오늘은 좋은 책에 갇혀 따뜻한 영혼이 차오르는 기쁨을 맞이하고 싶은 날이네요. 이왕이면 아이들의 따뜻한 배를 끌어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