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유재석은 평소 방송을 통해 “카톡 울림 소리에 방해받기 싫어서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SBS

“유재석씨가 왜 카카오톡을 안 쓰는지 알겠더라고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모(35)씨는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지난 주말 3주째 미뤄둔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이씨는 “해외 업무에 시차가 있어 주말이나 밤에도 카톡이 울릴 때가 잦다. 평소엔 집중할 만하면 울려대는 카톡 소리에 번번이 방해받기 일쑤였다”며 “카톡이 안 된다는 걸 안 순간부터 해방감이 찾아왔다. 개그맨 유재석씨가 계속 ‘카톡 카톡’ 울리는 게 싫어 가입하지 않는다는데, 이를 ‘격공(격하게 공감)’하는 주말이었다”고 말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먹통 된 지난 15일과 16일, 갑자기 개그맨 유재석의 마음에 공감했다는 이가 많아졌다. 이른바 ‘카톡 디톡스’를 강제로(?) 겪으면서 생긴 일이다. ‘카톡 디톡스’란 각종 전자 기기 등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 심신을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에 카카오톡을 더한 말. 카카오는 서비스 장애 약 11시간만에야 기본적인 메시지 수·발신 기능을 복구했다. 이번 장애로 대다수가 불편을 겪었지만, 한편으론 평소 높았던 카카오 의존증에서 벗어나 오히려 쉴 수 있었다는 이가 많았다.

◇평소 카톡 안 쓴다는 유재석

개그맨 유재석은 방송에서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가입하자마자 내가 아는 전화번호가 친구로 와다닥 뜬다” “단체방에 대화가 막 백 몇 개씩 올라온다”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이 단체방에 뜨는 게 싫다” 등이 유재석이 밝힌 이유다. 배우 송지효도 마찬가지. 그는 “카톡을 하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며 “(단톡 방의) 잠깐의 재미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카톡을 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경기도에서 중학교 1·3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김연지(43)씨는 “카톡 하나 멈췄을 뿐인데 일상에 집중력이 살아나더라”며 “이번 주말 오랜만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밥을 먹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엔 밥 먹다 보면 누구 핸드폰이든 먼저 카톡이 울리거든요. 한 사람이 보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은 메시지가 오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또 따라서 들여다봐요. 카톡이 되지 않으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방에 두고 식탁에 앉더군요.”

김씨는 “세어보니 나도 친정 방, 시댁 방, 아이들 학교 엄마들 방, 친구들 방 등 단톡 방만 9개가 있더라”며 “카톡이 안 되던 날 밤 핸드폰을 보니 배터리가 거의 안 닳아서 신기했다. 그동안 닳았던 핸드폰 배터리만큼 나도 에너지를 많이 뺏겼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 했다.

중2 딸을 둔 학부모 김윤진(48)씨도 “이번에 카톡이 안 되니 아이가 휴대폰을 냅다 집어던지고 갑자기 숙제를 하기 시작하더라”면서 “평소엔 늘 휴대폰을 거실에 두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좋더라”며 웃었다. 김씨는 “수시로 울리는 카카오톡 읽고 답장하느라 아이가 집중력을 많이 잃는 것 같아 속상한 적이 많았다”며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는 아마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카톡이 되지 않으면서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과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했다는 이도 많았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10년째인 임모(31)씨는 “요즘엔 가족들도 다 ‘가족 단톡방’을 이용하니 전화할 일이 거의 없지 않으냐”며 “이번에 카톡이 되지 않아 오랜만에 아버지께 전화했더니 참 좋아하시더라. 앞으로도 카톡보다 더 자주 전화로 소식을 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참에 ‘카톡 지옥’에서 벗어나 볼까

이참에 아예 카카오톡을 벗어나자는 ‘탈(脫) 카카오'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 이씨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가지도 못하고 간신히 대답만 하는 단톡방만 자꾸 늘어나던 중”이라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나갈 수 있을까 매번 고민했는데, 이번에 잠깐이지만 꿈이 이뤄졌다. 솔직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이씨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업무 전용 메신저를 따로 만들어서 처리하고, 개인적인 메신저 활동은 차차 줄여볼 생각”이라며 “이전엔 카톡 안 쓴다는 사람들을 ‘별종’ 취급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주부 김씨도 “카톡을 아예 안 쓰기까진 어렵더라도 최소 주말 몇 시간만큼은 온 가족이 휴대폰 보지 않기 운동을 해보려 한다”며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모드’를 설정해 와이파이를 차단하듯이 잠시 이 ‘비행기 모드’를 켜 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됐고 덕분에 편리한 점도 많아졌지만, 소통 단절 등 문제도 많이 생기고 있다”며 “이번 카카오 사태에서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지털 문명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한테 집중할 수 있는 창조적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이 박사는 2007년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통한 정신적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고 강원도 홍천에서 휴대폰 송·수신 등이 되지 않는 ‘힐리언스 선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24시간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현대인에게는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한 휴식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치유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정신적 휴식을 더 많은 이가 스스로에게 선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