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두두두두.”
강원 홍천군 서면에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 한밤중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울렸다. 이곳은 전화와 인터넷을 차단한 마을. 더구나 묵고 있던 방은 최고층으로 진동이 일어날 위층도 없었다. 알고 보니, 이는 디지털 금단현상 중 하나인 ‘유령 진동 증후군’. 휴대폰이 진동하지 않았는데도, 진동한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베이스테이트 메디컬센터는 직원 1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68%가 벨소리나 진동 환청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환청을 들은 사람 중 87%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13%는 거의 매일 겪는다고 했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완벽한 무(無)의 공간. 유령 진동에 오싹해진 기자는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사진첩을 열어 사진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0장쯤 지웠을까. 머릿속 잡념을 비워낸 듯 가벼워진 휴대폰을 꼭 쥐고 나는 잠들어 있었다.
3년간의 길고 긴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고 있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디지털 중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1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3~69세 스마트폰 이용자 1만 가구 중 24.2%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18.6%보다 5.6%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 기간 사람들은 집에서 공부하고, 회의하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우울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며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 눈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은 늘 손에 있었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을 켜놓고 있었다. 스마트폰 과의존 자가 진단 결과는 ‘통제권을 잃은 고위험군’.
그래서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로 갔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이곳은 전화도,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 공간. 방 안에 냉장고도 없고, 여름엔 밤 10시 이후 에어컨을 끈다. 휴대폰 없는 일상이 가능할까? 7권의 책만 들고 선마을로 갔다. 2박 3일 ‘디지털 디톡스’ 체험이 시작됐다.
◇유령 진동과 노모포비아
뉴욕타임스가 권하는 디지털 디톡스 체험 단계는 (1)디지털을 쓰지 않는 계획 일정을 세우고, (2)디지털 불가 지역을 만들며, (3)소셜미디어의 디지털 권유(인스타그램 좋아요 등)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선마을에 체크인을 하면 일정표가 나온다. 일단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메뉴는 산나물 비빔밥. 밥 먹는 내내 작동도 안 하는 폰을 만지작거렸다. 괜히 불안했다. 음식을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그걸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 수도 없었다. 폰으로 더 이상 할 것이 없음을 깨닫자 옆에 놔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휴대폰이 없을 때 불안감을 느끼거나, 수시로 만지작거리거나, 손에서 떨어진 상태로 5분도 버티지 못하는 현상을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라고 한다.
선마을은 카페도 ‘노 와이파이존’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지갑이 없다. 간편결제시스템으로 휴대폰만 달랑 들고 다니던 것이 습관이 돼서다. 방 호수와 이름을 적고,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하라다 히카의 책 ‘낮술’을 폈다. 30대 여성 쇼코가 밤을 지켜주는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다 읽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몰입’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한자리에서 오롯이 보는 것이 힘들었다. 영화 보다가 폰 보고, 책 읽다가 폰 보고.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폰을 보다 보니 몰입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미 컴퓨터 과학자 주디스 도나스에 따르면,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수용체는 스마트폰 중독으로도 망가져 웬만한 성취엔 보상기제를 발동하지 않는 구조로 바뀐다. 마약‧알코올중독자와 비슷한 변화를 겪는 셈이다.
카페에서 귀에 익은 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매진 드래곤스다! 그런데 노래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럴 땐 스마트폰 음성 검색 기능을 켜기만 하면 되는데! 답답함에 어쩔 줄 모르다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무릎을 쳤다. 이건 ‘빌리버’야! 한때는 노래방 책자의 곡목과 번호까지 외웠는데, 이젠 무조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기억력이 쇠퇴했다. ‘디지털 치매 현상’이다.
디지털 금단현상은 낮보다 밤이 더 힘들었다. 유튜브도, ASMR 영상도 없는 고요한 적막이 무섭도록 심심했다. 침대에 누워 책을 폈다. 영화 ‘파니 핑크’ 감독인 도리스 되리가 쓴 ‘미각의 번역’. 그가 촬영차 전 세계를 돌며 맛본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한 이야기다.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베트남 쌀국수에 이어 나폴리 피자까지 나왔을 땐 배달앱을 켤 뻔했다. 서울이었으면 당연히 피자를 주문하고 냉장고의 캔맥주를 땄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편의점도, 냉장고도 없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었다.
◇요가, 명상, 목공으로 금단현상 치료
미국의 심리학 저널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따르면, 디지털 금단현상을 이기는 데는 ‘명상’과 ‘요가’가 도움이 된다. 선마을에서도 피톤치드를 마시며 명상과 사색을 즐기는 ‘숲세러피’와 ‘디톡스 요가’를 가르친다.
먼저 ‘숲세러피’. 카페에서 세러피 장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네이버 지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잃을까 봐 10분 정도 일찍 출발했다. 수업 시간이 다 됐는데 한 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은 당연히 없었다. 잣나무숲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흰색 모기장을 설치했다. 거기 앉아 눈을 감고 바람 소리, 숲 냄새를 느끼는 게 수업의 전부였다. 그야말로 ‘숲멍’ ‘하늘멍’. 20분쯤 지났을까. 피부에 닿는 습기가 달라졌다. 웬걸, 갑자기 ‘쏴~’ 하고 비가 쏟아졌다. 돗자리를 우산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산을 내려왔다.
선마을에는 요가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다. 매주 수요일 마지막 수업은 ‘싱잉볼 음악 명상’이다. 싱잉볼은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던 도구로, 표면을 문지르거나 두들겨 울림의 파장을 만드는 종의 일종이다. 주석, 납, 수은, 금, 철, 구리, 은 등 7가지 금속으로 만든다. 그동안 싱잉볼은 유튜브에서 ASMR 영상으로만 봤다. 실제로 들어본 싱잉볼 소리는 조금 더 묵직하고 영롱했다.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칠흑처럼 캄캄한 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었지만, 별자리 앱을 켜고 싶은 충동은 들지 않았다.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취미를 갖는 것이다. 이럴 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다칠 수 있고,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목공’이 도움된다. 선마을에는 두 명의 목공 마스터가 상주하며 도마, 젓가락, 테이블 등 원하는 목공 제품을 만들게 도와준다. 나무를 자르고, 사포로 다듬었다. 전기 톱을 사용할 때, 목공 마스터는 “집중하지 않으면 다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네 토막의 나무들을 홈에 끼우니, 쟁반이 뚝딱 만들어졌다. 내 손이 한 일이다. 뿌듯함에 스마트폰을 좀 더 오래 잊었다.
디지털 없는 2박 3일 동안 삶이 단순해졌다. 밥 먹고, 책 읽고, 글 쓰고, 졸고, 토끼·고양이와 놀았다. 자정 전에 잠들었고, 알람 없이 눈을 떴다. 그렇게 48시간이 지난 뒤 체크아웃을 했다.
선마을 주차장을 벗어나자 휴대폰이 “카톡! 카톡!” 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메시지는 아니었다. 문자와 이메일도 확인했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없었다. 내가 디지털과 단절돼 있어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갔다.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시민단체 리부트는 매년 3월 첫 주말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구글은 스마트폰 사용을 억제하는 앱을 출시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디지털 디톡스 30일 챌린지’를 권장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을 보다 소중하게 즐기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