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페르세폴리스’(2007)의 한 장면. 이란계 프랑스인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경험이 담겼다. / 영화사 진진

1980년 이란. 열 살 난 소녀 마르지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작년까지 다니던 비종교적인 프랑스계 남녀공학이 문을 닫았다. 이제 마르지는 여학교에 다녀야 한다. 프랑스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입고 뛰어다니던 시절도 끝났다. 머리에 베일을 쓰고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 지난해인 1979년 세상이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란은 더 이상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한 국가가 아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틀어쥔 종교국가가 되고 만 것이다.

어른들 사정이 아이들의 일상까지 뒤흔들었다. 마르지가 좋아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포스터나 음악 테이프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범죄다.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살 수 있었던 청바지를 이제는 암시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마르지의 부모와 친척, 친구들은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몰래 술을 담그고 파티를 하지만, 그러다 걸리면 뇌물을 바쳐야 한다. 돈을 내기 싫다면? 감옥에 갇히고 채찍으로 매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란과 이라크는 축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는 숙적 관계. 이란이 이런 혼란에 빠진 틈을, 당시만 해도 건재하던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놓칠 리 없었다. 전쟁을 벌이더니 매일같이 폭탄을 퍼붓는다.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소년은 팔과 다리를 잃었고, 가정부의 아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서 운 좋게 살아 돌아왔지만 그의 친구는 모두 죽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이란계 프랑스인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가 고백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란 혁명은 지나간 과거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전개 과정과 세부 사항에 큰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열 살이던 마르지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이란 사람들은 스스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다. 그래놓고 왜 더 강압적인 이슬람 통치를 받아들인 걸까? 여자들에게 히잡을 씌우는 것은 독재 왕조 타도나 민주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순한 억압일 뿐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란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25년 수립된 팔레비 왕조는 위에서 추진하는 근대화를 꾀했다. 국민교육을 통해 문맹률을 90%에서 50%까지 낮췄다. 이란의 엘리트 계층은 자국 내에서 고등교육을 받거나, 여유가 된다면 해외 유학을 떠나도록 장려받았다. 히잡과 차도르를 금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심지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까지 줬다.

그러자 ‘근대화의 역설’이라 할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 생활양식에 친숙한 기층민들은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유학과 해외여행 등을 통해 한껏 눈높이가 높아진 엘리트들은 비밀경찰에 의존한 국왕의 철권통치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근대화의 혜택을 덜 받은 계층은 전통 혹은 인습으로 퇴행하려 들고, 근대화의 혜택을 더 받은 계층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치적 변혁을, 심지어는 공산혁명까지 꿈꾸게 된 것이다.

이 혼란을 틈타 이슬람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와 종교인들에게는 현대화한 이란을 온전히 운영할 역량이 없었다. 종교와 윤리, 도덕을 앞세워 국민을 찍어 누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팔레비 2세, 일명 ‘샤’의 비밀경찰을 쫓아낸 거리에는 호메이니의 윤리 경찰들이 활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과 행동을 단속하는 그들과 함께, 위에서 추진한 근대화가 실패하고 난 자리를 엄숙주의가 대체해버렸다.

<페르세폴리스>로 돌아가 보자. 마르지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지만 정신적 방황을 겪고 테헤란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집 밖으로 나가려면 히잡을 쓰고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 신세. 마르지는 문득 깨닫는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내 바지가 충분히 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이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 만한가? 정치범들은 어떻게 됐나?’ 같은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근대화의 역설을 통해 성장하고,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잡은 무능력자들이, 엄숙주의를 무기 삼아 국민을 윽박지르는 현상.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그리 드물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다. 지난 정권 당시 운동권 출신 집권 세력이 벌였던 반일 선동이 대표적이다. 그런 선동에 놀아난 일부 국민은 스스로 ‘반일 윤리 경찰’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 브랜드 옷을 입는다고, 일본 자동차를 탄다고, 일본 여행을 가서 소셜미디어(SNS)에 인증샷을 올린다고 서로 비난하며 허둥지둥 감추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비록 정권은 잃었지만 그 엄숙한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은 그리 약해지지 않았다. 도덕과 민족을 앞세워 우리를 윽박지를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2022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 여성들의 반(反)히잡 시위 역시 그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9월 13일 테헤란에 관광 갔다가 복장 불량으로 체포되었던 22세 대학생 마흐사 아마니가 16일 사망했고 경찰의 폭행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을 계기로 전국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한 원인은 분명하다. 지난해 보수파인 라이시 대통령이 중도파를 밀어내고 집권했는데, 그 결과 국내외의 압력과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이란 정부는 ‘여자들 옷 단속’을 강화하는 식으로 무마하려 들었다. 40여 년 전 이슬람 세력에 권력을 쥐여준 엄숙주의의 칼을 빼 든 것이다.

하지만 이란 국민들, 여성들은 더 이상 인습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 최소 5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시위의 불꽃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이렇게 이란은 ‘위에서 추진한 근대화’를 넘어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페르세폴리스의 영화를 자랑하던 문명국가 이란. 그곳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은 채 자유를 만끽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