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그런 더러운 걸 찾아서 보는 거야? 당신 정말 정신과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30대 직장인 A씨는 친구들에게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취미가 있다. 막힌 구멍에 걸린 딱딱한 기름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 배수구 청소 영상이나 피부에 박힌 피지와 블랙헤드를 뽑아내는, 이른바 ‘더티 플레저(Dirty Pleasure)’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이에서 치석이 뚝뚝 떨어져 나오는 스케일링 영상이나 내성 발톱으로 발가락에 가득 찬 고름을 쭉 짜내는 풋케어 영상도 즐긴다. A씨는 “아내가 ‘차라리 성인용 동영상을 보는 게 낫지 않냐’고 할 정도로 싫어해서 최근에는 아내 몰래 찾아본다”고 했다.
‘더티 플레저’를 남몰래 즐기는 이는 적지 않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 게시된 ‘더티 영상’ 중 누적 조회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경우는 흔하다. 영상에는 “보고 있으니 제 기분까지 다 상쾌해진다” “내가 왜 이런 더러운 걸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빠져든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편이나 자녀 등 가족이 더티 플레저 영상을 찾아보는 것을 걱정하는 고민 상담 글도 적지 않게 보인다.
더티 플레저의 원조는 피부에 박힌 피지를 뽑아내는 영상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이른바 ‘피르가즘’ 신드롬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서 이런 피지 제거 영상이 큰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도 피부과 병원과 미용실이 앞다퉈 피지 제거 영상을 올렸고, 지금도 두꺼운 팬층을 자랑한다. 피지 제거 영상을 즐겨 본다는 30대 직장인 B씨는 “피지가 뽑히는 영상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 때문에 진지하게 피부 케어 쪽으로 전업할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치석 제거, 발톱 관리, 귀지 파기, 하수구 뚫기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5년 전부터 하수구 뚫는 영상을 올려 구독자 23만명에 동영상 누적 조회가 총 8700만회를 넘긴 유튜브 채널 ‘하수구의 제왕’ 운영자인 어재욱(41) 일통배관 대표는 “해외에서 만든 관 뚫는 영상이 꽤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고 직원들을 설득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며 “시청자 대부분은 순수한 재미로 시청하지만 영상을 보고 작업 의뢰를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소문이 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어 대표는 “갈수록 비슷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가 많이 생겨서 수익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 피부과 의원 측은 “예전엔 피지 제거 영상 하나의 조회 수가 200만을 넘기도 했다”며 “요즘에는 워낙 비슷한 영상이 많다 보니 ‘조회 수 대박’이 쉽지 않다”고 했다.
왜 사람들은 굳이 더러운 것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더티 플레저를 찾아보는 걸까. 일각에서는 ‘대리 만족’으로 설명하지만, ‘먹방’과 달리 더티 플레저는 종류에 따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혐오감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리 만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미 심리학자 클락 매콜리는 외신을 통해 “피지 제거 영상 등을 보는 건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더티 플레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피지나 치석 등으로 고통받거나 막힌 하수관으로 오수가 역류하는 고충을 겪는데, 이들의 고충이나 어려움을 보면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안전한 상황에 있다는 안도감, 묘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더티 플레저 마니아들이 말하는 ‘묘한 쾌감’은 ‘긴장의 고조와 해소’라는 카타르시스로도 설명된다. 여드름이 불룩해졌다가 안에 든 고름이 ‘툭’하고 터져 나오거나 꽉 막혔던 기름 덩어리가 배수구 밖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다가 일순간에 해소되면서 느끼는 짜릿함과 비슷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더티 플레저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현실의 스트레스가 크고 삶이 팍팍해, 그런 영상을 보며 감정의 카타르시스 같은 정화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듯 더티 플레저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에 따라 더티 플레저를 보며 혐오감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고, 혐오감 너머의 안도감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근 ‘피르가즘’의 원조라는 미 피부과 전문의 샌드라 리가 업로드한 피지·블랙헤드 제거 영상에 대해 유튜브 측이 “충격을 주거나 혐오감을 줄 목적으로 보이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며 수익 창출을 금지해 논란이 일었다. 더티 플레저에 심한 혐오감이나 충격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더티 플레져는 인간의 관심을 더 강하게 끌고, 확산성도 크다는 게 심리학자들 분석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혐오 이미지나 영상을 한번 보면 잘 잊지 못하고, 그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온라인에서 공유하려는 경향도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티 플레저 마니아들은 정신과에 한번 가봐야 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더티 플레져를 문제라고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많이 본다면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다른 종류의 영상을 과도하게 많이 보는 것과 비슷한 문제일 뿐, 더티 플레저가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