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의원들은 “스마트폰 조심하라”는 덕담을 인사말처럼 주고받는다고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의 스마트폰 대화창이 잇따라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 모두 국회 출입 사진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건진 특종들이다. 당사자는 망신을 당하지만, 이를 접하는 국민은 여의도 정가의 이면을 보는 재미에 열광한다. 정국 상황을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진들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안경 만지면 셔터 누른다
사진기자들은 본회의장 2층에 마련된 방청석에서 국회 풍경을 취재한다. 20~30m 앞 피사체를 깨짐 현상 없이 촬영할 수 있는 망원 렌즈와 카메라를 이용해 의원들의 수첩이나 휴대폰 화면을 찍는다. 카메라에 담긴 내용도 다양하다. 인사 청탁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조건 만남, 누드 사진을 검색하다 카메라에 잡혀 공천이 취소된 경우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불륜 관계로 추정되는 상대와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최근엔 각 당 지도부가 텔레그램 등으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사진기자들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정치 거물들의 휴대폰 화면이 자주 찍히는 이유는 국회 좌석 배치 때문이다. 주요 당의 지도부는 1층 의원석 중 맨 뒷좌석에 앉는다. 뒷자리는 출입구와 가까워 통행이 편리하고 앞에 앉은 의원들을 보기 쉽다는 점 때문에 선수(選數)가 높은 중진 의원들이 앉는다. 뒷좌석과 사진기자석은 10여 m에 불과해 망원 렌즈로 찍으면 스마트폰 글자도 비교적 선명하게 잡힌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는 시간은 3~4초 정도로 짧아, 의원이 화면을 켠 뒤 카메라를 들이대면 놓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평소 주요 의원들의 동태를 꼼꼼히 파악해둔다. 이를테면 이재명 대표처럼 안경을 쓴 의원은 휴대폰을 보기 전 안경테를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손동작을 예의 주시한다. 17년 차인 한 사진부 기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뭔가 생각이 나면 수첩에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당시 기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책상에 손을 올리기만 하면 셔터 누를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이재명·권성동의 ‘의도적 흘리기’?
일부 노련한 의원은 이런 사진 보도를 역이용한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거나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특정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흘리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화면을 양옆으로 돌리고, 방청석 사진기자 위치를 확인한 다음 찍히기 좋은 각도로 수첩·휴대폰을 책상에 올려두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권성동·이재명 사진이 “일부러 흘린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 소식이 알려진 1일 보좌관으로부터 받은 ‘전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 역시 의도된 노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기자들은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 사진을 보도한 뉴스핌의 최상수 기자는 본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단톡방 메시지 알림이 오고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1~2초 만에 몸을 웅크려 스마트폰을 가리는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보아 일부러 흘린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경우 윤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낸 지 4시간가량 지나 휴대폰을 열어보는 모습이 포착돼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한 사진기자는 “일부러 보여주기엔 너무 민감한 내용인 데다, 촬영될 당시 휴대폰을 쥔 권 대표의 손 위치가 무릎 쪽이었던 것을 보면 안 보이게 하려다 실수로 노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보호 필름 붙이고, 온 몸으로 막고
의원들은 국회 사진기자들을 ‘여의도 파파라치’라 부르며 필사적으로 피하려 애쓴다. 휴대폰에 사생활 보호필름을 부착하는 게 대표적. 보호필름을 붙이면 측면에서 촬영할 경우 어두운 화면밖에 찍히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는 권 원내대표의 사진이 공개된 7월 말 이후 자신의 휴대폰에 보호 필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 사진부 기자는 “권성동 대표 사건 이후 국회에 대대적인 필름 부착 붐이 일었고, 몸을 책상 아래로 숙여 스마트폰을 보는 의원도 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회의 ‘휴대폰 잔혹사’는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메시지 알림이 뜨면 습관적으로 보거나, 아예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는 의원이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