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마음껏 골라보세요.” 담당 편집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냉장고를 가리켰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훌륭한 회사예요’라는 표정이었다.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 놓고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는 잔칫집 주인장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쇼케이스 냉장고에는 다양한 음료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컵라면, 즉석밥, 비스킷, 젤리, 사탕, 초콜릿, 심지어 아이스크림, 과일까지 먹을거리가 그득 쌓여 있었다. 편의점 차려도 되겠구나!

“커피는 저쪽입니다.”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맞은 편을 가리킨다. 구라파 감성이 엿보이는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이 듬직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헤이즐넛, 카푸치노……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실 수 있는 탕비실. 이런, 편의점 주인장에게 출판 계약하자고 불러놓고 이렇게 기죽이는 ‘대체 편의점’부터 보여줄 건 또 뭐람. 지난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어느 출판사에 들렀다 겪은 일이다. 아, 물론 좋은 자리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집자님.

회사가 밀집한 오피스 상권에서 장사하는 편의점 점주들이 싫어하는 변화는 바로 이러한 변화. 인근 회사 탕비실이 완벽해지고 대한민국 기업들의 ‘사내 복지’가 날로 발전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각자 지갑 열어 해결할 것을 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하고 있으니 편의점주 입장에선 한숨만 나올 일이지. 요즘 회사 탕비실은 종이컵에 믹스커피, 전기포트만 달랑 있던 그 옛날 후미진 공간이 아니다. 밝은 조명에 하이그로시 인테리어가 반짝이고, 세련된 조리기구,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른다. 따로 편의점이나 카페에 들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어? 우리 회사 탕비실은 그렇지 않다고요? 사장님에게 건의해보세요. 요즘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정기적으로 탕비실을 채워주는 전문 업체까지 있답니다. 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세상사 다 그렇지만 손님에게는 행복한 변화가 편의점주에게는 씁쓸한 변화가 되기도 한다. 학교 앞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싫어하는 변화가 뭘까? 익살스레 말하자면, 학교 급식이 훌륭해지는 것이다. 반찬이 맘에 들지 않은 날 아이들은 방과 후 편의점으로 달려가지만, ‘끝내주는’ 반찬이 등장하는 날이면 편의점은 왠지 썰렁해진다. 아, 물론 아이들의 건강한 식단을 챙겨주시는 급식 관계자 여러분께는 언제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응용 문제. 유흥 상권 편의점 점주들이 싫어하는 변화는 뭘까? 그야 회사 회식이 줄고, ‘술을 끊겠다’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이다. 공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싫어하는 변화는? 그야 휴일에 비가 내리는 것. 병원 구내 편의점 주인장이 싫어하는 변화는? 그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줄어드는 것이지. 유명 맛집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싫어하는 변화는? 그야 맛집 사장님이 “인생엔 여러 갈래 길이 있더군요. 이젠 자유롭게 살렵니다”라는 안내문 한 장 붙여 놓고 산티아고 순례길 떠나는 일 되시겠다. 절반쯤 우스갯소리지만, 이런저런 변화에 우리는 울고 웃는다.

‘즐거운 변화’도 있다. 검찰청 건물 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시절에 좋았던 날은 거물급 정치인이 피의자로 출두하는 날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어찌나 언론사가 많은지 수백 명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오고, 지지하고 규탄하는 시위대가 양쪽으로 갈라져 고함지르고, 경찰도 몇 개 중대가 동원됐는데, 편의점 주인장의 눈에는 이런 모든 소용돌이가 ‘잠재적 손님’으로만 보였단 말이지. 유명한 분들이 많이 잡혀 오셨으면, 하는 정의로운 희망을 가졌더랬다. 아, 물론 이것도 절반쯤 농담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여러 뉴스를 보며 저것이 내게 유익한 변화가 될는지 불리한 변화가 될는지 가늠하곤 한다. 전국 수만 곳 편의점 점주들도 마찬가지.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옆자리에 새로운 동료가 들어오고, 비어있던 인근 건물에 새로운 가게가 생긴다는 소식만 들려도, 그것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부터 헤아리게 된다. 그렇게 숱한 변화를 겪으며 깨달은 평범한 교훈이 있으니, 변화에 맞서 분투하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변화에는 담담히 순응하며 운명에 맡기는 처세랄까. 부대끼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편할 때가 있고, 빨리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때도 있더라.

햇수로 3년째 이어지는 역병과 거리 두기, 이젠 한 몸이 된 마스크, 다시 10만을 훌쩍 넘어서는 일일 확진자, 그동안 걸린 적 없던 사람들의 투병 소식, 우울한 나날에 전해지는 더욱 암울한 정치권 이야기, 뜀뛰는 물가와 곤두박질하는 주가, 거기에 하늘이 찢긴 듯 쏟아붓던 폭우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한숨짓는 잿빛 일상에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시대를 무엇으로 견뎌낼 것인지에 대해 돌아본다. 수재로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 묵묵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