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그릇들을 여럿 내다 버렸다. 쓰지도 않으면서 이사 때마다 달고 다니던 밥그릇들이었다. 결혼할 때 어머니가 챙겨주신 것도 있고 아내가 가져온 것도 있을 것이다. 꺼내놓고 보니 밥그릇이 작은 화분만 했다. 용량을 따지면 국그릇보다도 더 클 것 같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래도 밥은 많이 먹을게요.
20세기 전반만 해도 밥그릇은 지금의 국그릇만 했다. 주발에 고봉밥을 쌓아올려 먹고 밥심으로 일하는 게 한국인의 일상이었다. 행남자기에서 1942년 내놓은 밥그릇 용량은 700g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밥을 고봉으로 올렸으니 한끼에 밥 800g은 먹었을 것이다. 햇반이 210g이니 그의 네 배에 육박한다. 이번에 버린 그릇들 용량도 최소 400g은 될 것이다.
어렸을 적 명절에 외삼촌 댁에 가면 그런 그릇에 고봉밥을 주시고 한 톨도 남기지 못하게 했다. 반찬은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엔진 돌리지 못하니 조카들 연료 탱크에 휘발유 가득 채워주시겠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에 비하면 요즘 한 끼에 먹는 밥의 양은 150g이나 될까 싶다. 밥을 적게 먹고 반찬을 많이 먹으라고, 탄수화물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모든 건강 뉴스가 울부짖으니 그 이상 먹으면 당장 병에 걸릴 것 같기도 하다.
고봉밥은 1970년대 중반 공깃밥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공깃밥이 생겨난 것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쌀이 부족한데 음식점에서 솥밥을 남겨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니 스테인리스 공기에 밥을 담아 손님상에 내라는 행정명령이 나왔다. 밥공기는 지름 10.5cm, 높이 6cm여야 하고 밥은 공기의 80%만 담아야 한다는 규정도 생겨났다. 이를 어기는 식당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니 모든 음식점에 품격이라곤 없는 스테인리스 공깃밥이 등장했다. 이후 쌀 생산량이 늘면서 행정명령은 흐지부지됐으나 공깃밥은 식당밥의 전형으로 남았다.
일본을 비롯해 쌀이 주식인 나라 어디를 가도 밥을 쇠그릇에 담고 뚜껑 덮어 내오지 않는다. 사기그릇에 포슬포슬 퍼 담은 밥과 탄약통처럼 생긴 그릇에 담아 배식하듯 나눠주는 공깃밥을 비교하면 한국인의 밥이 초라하고 옹색하다. 참치 요리를 주문했는데 한쪽은 접시에 담겨 나오고 다른 쪽은 참치캔으로 나온 느낌이랄까.
고깃집에 가서 공깃밥을 시키려고 보니 1500원이었다. 물가 오르는 새 슬그머니 50%나 올렸다. 8000원짜리 설렁탕이 한번에 1만2000원 된 격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밥이 절반 남짓 담겼다. 어머니, 이제 밥을 많이 먹으려면 밥을 덜 먹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