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노지 딸기는 굵고 때깔 좋은 요즘 딸기와 달리 작고 볼품없어도 새콤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차가운 우물물에 저녁 내내 담가 두었던 두꺼비 등껍질 닮은 개구리참외의 싱싱한 식감 또한 잊을 수 없다. 짙다 못해 새까만 포도는 서양 포도가 따라올 수 없는 맛이다. 달고 물 많은 ‘먹골배’의 시원함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새색시 볼 같은 ‘홍옥’ 사과를 허벅지에 쓱쓱 문지르고 껍질째 크게 한입 깨물면 아삭하면서 입안이 상큼했다.
입이 짧아 먹성이 왕성하진 않았어도 어려서부터 과일만큼은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여름철 최고 인기 먹거리인 수박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씨를 일일이 고르기가 귀찮았다.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 조각을 들고 먹으려면 옷에 얼룩이 생기고 손과 입 주위가 끈적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씨를 씹으면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여름밤 정원의 평상에 둘러앉아 숭숭 썬 수박을 우적우적 씹고 한꺼번에 후드득 씨를 뱉어내는 식구들의 재주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두커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차셨다. “쯧쯧 까탈스럽긴. 쟤는 생선도 가시 바르기 싫다고 등 쪽만 끼적거리는 애야.”
아내 역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박을 무척 좋아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동네 수퍼마켓 입구에 탐스러운 수박이 등장하면 연례행사처럼 부부가 티격태격한다. 단출한 식구가 소화하기에 요새 수박은 상당히 크다. 정 먹고 싶으면 잘라서 파는 반쪽 수박을 사자고 해도 아내는 남이 손댄 것은 싫다며 막무가내다. 세상천지에 마누라 이기는 사내가 있나? 수박을 부둥켜안고 가게 문을 나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무겁기도 하지만 부피가 엄청나서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냉장고에 들어갈 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떻게 하지?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나.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수박을 쪼개서 잘 익은 속살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고 뾰족한 젓가락 끝으로 톡톡 씨를 솎아냈다. 네모난 조그만 수박덩이를 차곡차곡 밀폐 용기에 쌓으면 냉장고에 넣기 간편했다. 먹을 때 필요한 만큼 보시기에 담아 포크로 찍어 먹으면 손댈 필요 없고, 씨 바르는 불편 없이 먹을 수 있다. 새로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만 커다란 수박 해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중(伏中)에 작업을 마치면 러닝셔츠가 땀범벅이 됐다.
먹기 편하게 잘라 씨까지 말끔히 털어낸 수박을 딸아이 집에 보냈다. 딸과 사위는 물론 귀여운 손녀가 아주 좋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일이 있고 해마다 여름이면 ‘깍두기 수박 작전’이 외할아버지의 책무 아닌 책무가 됐다. 수박 손질에 걸리는 시간 말고도 껍질 처리, 그리고 씨와 과즙으로 어지러워진 부엌 청소가 만만치 않았다. 냉장고에 쉽게 넣고, 먹을 때 편리토록 시작한 일이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 하지만 힘은 들어도 토끼 같은 손녀가 맛있게 먹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느 날 휴대폰에 연락이 왔다. 딸 내외와 손녀가 커다란 수박을 가운데 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니, 올해도 먹기 좋게 해서 보낼 텐데 왜 수박을 샀지? 얻어만 먹으니 미안해서 아비를 대접하려나?”
뒤미처 공책을 찍은 사진이 떴다. 글씨가 작아 크게 벌려서 보니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선생님께서 보낸 가정통신문이었다. 지금은 정확한 자구(字句)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요지는 따님이 수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부모가 수박을 직접 보여주며 가르쳐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나이에 비해 엄청나게 똑똑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할아비가 정성스레 보내준 수박을 잘 먹고도 수박을 모른다고?”
이내 소상한 이유를 듣고 무릎을 쳤다. 손녀는 빨간 깍두기 모양의 과일을 수박이라고 알았지, 줄무늬에 둥근 초록색 수박의 본래 모습을 몰랐던 것이었다.
딸과 사위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애들을 데리고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섭섭했지만 어쩌랴. 출국장에서 큰손녀가 꼭 놀러 오라면서 연신 뒤돌아보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손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평소에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내는 성탄절 즈음에 일정을 잡는다,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함께 즐길 곳을 알아본다며 갖은 수선을 떨었다. “우리 음식이 먹고 싶을 거야. 애들 선물은 뭘 사 가야지? 집이 좁을 테니 잠은 가까운 호텔에서 자야지.”
한껏 들뜬 마음이 수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정한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서 지구촌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별수 없이 항공편과 호텔 예약을 1년 주기로 연거푸 연기하면서 4년이 가깝도록 손녀들의 재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시로 ‘카톡’으로 대화하고 주말마다 영상 통화를 하지만 손녀들을 안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맛을 느낄 수는 없다. 부쩍 자라서 큰 녀석은 이제 4학년이 되고 작은 손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둘 다 제법 소녀 티가 나고 영어도 완전 꼬부랑 본토 발음이다.
부모가 어련히 알아서 하련만 칠칠치 못한 할아비는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다.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할아비 표’ 수박이 그리울 텐데…, 노래 가사처럼 태평양을 건너 달려갈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