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아워스’에서 클라리사(메릴 스트리프)가 계란을 깨 분리해 낸 노른자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파라마운트 픽처스

여자는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손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란을 거칠게 깨기 시작한다. 대접의 가장자리에 세게 부딪쳐서 거의 박살이 난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간신히 가른다. 계란이 소리 없이 절규한다.

남성은 여성의 행복에 필요한 존재인가? 영화 ‘디 아워스’(2002)는 그 대답으로 세 여성의 이야기를 한데 얽어 펼쳐 놓는다. 1923년의 영국에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있다. 정신건강을 위한답시고 교외에 붙잡혀 살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쓴다. 그리고 1951년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로라(줄리언 무어), 2001년 뉴욕에 사는 클라리사(메릴 스트리프)가 있다. 로라는 남편에게, 클라리사는 젊은 시절의 연인 리처드에게 물리적, 감정적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그 답답함을 둘 다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으로 달랜다.

영화의 현재인 2001년에서 클라리사는 파티를 준비한다. 옛 연인이자 시인인 리처드가 받는 공로상을 축하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에이즈에 걸린 리처드는 시상식도, 파티도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클라리사에게 부담을 안긴다. 그런 가운데 리처드의 옛 동성 연인인 루이스가 예상보다 일찍 클라리사의 집으로 찾아온다. 어린 시절 리처드와 나눴던 사랑을 평생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온 클라리사에게 루이스는 눈치 없게도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클라리사는 루이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마침 깨고 있던 계란에 투사한다. 그릇의 모서리에 계란을 거칠게 부딪쳐 깨고는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다.

나에겐 엄청 사무치는 장면이었지만 한편 회의가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계란으로 클라리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황백지단의 식문화가 사라져 버린 우리에게는 이제 낯설지만, 서양 요리에서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 가르기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흰자는 수분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노른자는 지방이 대부분이다. 두 구성 요소의 성질이 확연하게 다르므로 음식과 요리에서도 역할이 분명하게 갈린다.

특히 흰자는 거품기로 휘저어 공기를 불어넣어 주면 단백질의 구조가 재편되며 면도 거품과 같은 질감으로 변신한다. 이를 머랭(meringue)이라 일컫는데 케이크를 위시한 서양 디저트에 폭신함을 불어넣는 데 쓰인다. 단백질 구조가 재편되면서 많은 양의 공기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인데 다만 조건이 있다. 노른자의 지방이 티끌 만큼이라도 섞이면 절대 거품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흰자와 노른자를 잘 분리해야 하고 당연히 계란부터 잘 까야 한다. 대부분이 클라리사처럼 계란을 대접의 가장자리에 부딪치는데 그러면 계란 껍데기가 크고 날카롭게 깨지면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노른자를 터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계란은 싱크대처럼 평평한 면에 가볍게 두들겨 틈을 낸 뒤 엄지와 검지를 밀어 넣어 깬다. 한편 깬 껍데기를 컵처럼 활용해 노른자를 담아 흰자와 분리하는 경우도 많은데, 역시 노른자를 터뜨릴 수 있으므로 계란을 손바닥에 올려 손가락 사이로 흰자를 자연스레 흘러내려 보내 가른다.

클라리사는 계란을 분리해 무엇을 만들려고 했을까? 파티라는 맥락과 서양의 식문화를 감안할 때 분명히 디저트였을 것이며, 특히 케이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끝끝내 알 수가 없다. 리처드가 시상식 참석을 위해 데리러 온 클라리사의 눈앞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한 모든 음식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비보를 듣고 리처드의 어머니가 클라리사의 집으로 찾아온다. 알고 보니 그는 바로 1951년의 로라였다. 로라는 죽느니 삶을 택했다며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이야기한다. 로라의 남편은 아내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신이 꿈꾸는 가정의 부속으로만 취급했다. 한편 버지니아 울프는 시골 생활 끝에 1941년, 익사를 택한다. 그는 남편인 레너드의 의사를 따라 시골에 살았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클라리사의 보살핌을 받던 리처드는 그의 눈앞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영화는 여성의 행복에 남성은 필요하지 않노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