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1억원을 모은 스물네 살 아가씨 사연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봤다. 월급 200만원 안팎을 받는 그의 비결은 단순했다. 쓰지 않는 것이다. 밥은 모두 집에서 해 먹고 물은 수돗물을 끓여 마신다. 걸어서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에만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열여덟 살 때부터 머리는 직접 자르고 있다. 4년간 배달 음식은 단 한 번도 시켜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월급 200만원을 4년간 전액 저축해도 1억이 될까 말까 하는데 어떻게 큰돈을 모았을까.
그녀의 집에는 휴지며 생수, 가재도구 같은 새 물건이 그득했다. 모두 이벤트에 응모해 경품으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 물건은 전부 중고 시장에서 현금으로 바꾼다. 한 달 식비로 보통 1만원 미만을 쓰고 아주 많이 쓰면 3만원가량이라고 했다. 물건 사고 받은 영수증을 적립해 포인트 50원을 챙긴다는 그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그녀가 최근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고 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평생 대출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파트 중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게 됐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자기 삶을 책임져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절약과 저축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고 한다. 늘 같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래에 비해 너무 일찍 철든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부모와 환경 탓을 할 법도 한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요즘 ‘무지출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물가가 치솟아 생활비가 크게 늘자 한 달에 며칠은 아예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가계부에 ‘지출 0원’ 식으로 쓴다고 한다. 요즘 웬만한 식당에서 한 끼 해결하는 데 1만원은 있어야 하니 외식 한 번 할 때마다 통장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축왕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식재료를 냉장고에 쌓아두고 습관적으로 외식하면서 식비가 이중으로 드는 게 사실이다. 당장 엊저녁만 해도 집에 먹을 게 그득한데 귀찮다는 이유로 9000원짜리 설렁탕을 사 먹었다.
오늘 저녁엔 찬밥을 볶아 오므라이스를 해 먹어야겠다. 케첩이 다 떨어져가지만 문제없다. 저축왕 아가씨의 비법을 쓰면 된다. 케첩 통을 스타킹에 거꾸로 넣고 빙빙 돌리면 원심력 때문에 남은 케첩이 마개 쪽으로 몰린다. 스타킹을 빙빙 돌리는 아저씨 모습이 어째 궁상맞지만, 고물가 시대엔 궁상도 센스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