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중소 영화 배급사 ‘네온’이 배급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왼쪽부터) ‘티탄’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 네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 열린 칸 영화제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하나 더 있다. 북미 중소 영화배급사 ‘네온’의 배급작이라는 것이다.

톰 퀸 네온 CEO. / 네온

“내년 황금종려상이 궁금하면 네온이 무엇을 배급하는지를 봐라.” 영화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황금종려상 맞히는 확률이 ‘신내림급’이라는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심사위원장 뱅상 랭동이 손을 맞잡은 사진에는 ‘네온의 세 남자들’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송강호는 ‘기생충’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랭동은 ‘티탄’의 남자 주인공이어서다.

네온은 2017년 톰 퀸과 톰 리그가 공동 창업한 중소 배급사다. 직원수도 30여 명밖에 안 된다. 그러나 3연속 황금종려상 외에, 코로나 기간이었던 2021년 황금종려상, 심사위원상(메모리아), 여우주연상(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등 3관왕을 받았다. 창립 첫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이, 토냐’로 여우조연상을 가져갔으며, 2020년 ‘기생충’으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는 거대 배급사 소니 픽처스만 갖고 있는 기록이다. 네온은 어떻게 작지만 강한 배급사가 됐을까.

◇편견을 뒤집어라

네온은 세상의 편견에 질문 던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기생충’은 빈부와 선악의 구도를 뒤집었다. ‘슬픔의 삼각형’은 부(富)로 만들어진 계급의 피라미드가 무인도라는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통념도 뒤집는다. ‘티탄’은 사람과 금속의 사랑을 다룬다. 2019년 칸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귀족 가문의 소녀와 여성 화가의 사랑을 다룬다.

언어의 장벽도 개의치 않는다. ‘기생충’은 한국어, ‘티탄’은 프랑스어, 2018년 칸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경계선’은 스웨덴어, 201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3관왕을 받은 ‘허니랜드’는 터키어다.

폭력과 잔인한 장면도 그대로 노출한다. 세계 최초 바디 호러 장르라는 수식어가 붙은 ‘티탄’은 그 폭력성이 충격적이다. ‘슬픔의 삼각형’ 역시 구토 장면 등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나뉜다. 톰 퀸은 “네온의 타깃층은 45세 이하의 폭력과 외국어, 논픽션에 대한 반감이 없는 사람들이다”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을 담아내는 영화

“내 꿈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는 것이다.”

2019년 톰 퀸은 미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말했다. 그래서인지 네온의 배급작 중에는 실제 스토리를 기반으로 했거나, 다큐멘터리가 많다. 네온에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준 ‘아이, 토냐’는 미국의 피겨 선수 토냐 하딩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듬해 배급한 ‘보리 VS 매켄로’도 1980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만난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의 이야기다. ‘스펜서’ 역시 영국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을 그렸다.

2019년 배급작 ‘아폴로 11′ ‘허니랜드’는 실제 다큐멘터리다. 202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대상을 받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특이한 장르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난민이 덴마크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뤘다. 이런 노력으로 2020년 미국 잡지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영화·TV 부문 혁신 기업 6위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을 우선하는 영화광

톰 퀸은 재능 있는 감독을 발굴해 인연을 유지한다. 퀸은 2006년 ‘괴물’로 봉 감독을 처음 만났고, ‘마더’ ‘설국열차’ 등을 배급하며 가까워졌다. ‘설국열차’ 때는 하비 웨인스타인의 가위질을 막아내기도 했다. 봉준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는 네온을 설립하자마자 영화 ‘옥자’의 북미 배급을 맡고 싶어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허락하지 않자, 시나리오 단계였던 ‘기생충’의 북미 배급권을 일찌감치 구매했다.

‘티탄’의 뒤쿠르노와도 2016년 ‘로우’ 때부터 알고 지냈다. 회사를 창립하자마자 뒤쿠르노를 접촉했고, 2019년 ‘티탄’은 대본만 보고 샀다. 그 결과는 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 단독 수상. 봉준호의 ‘기생충’ 아카데미 경쟁 때만 해도 ‘네온이 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네온만이 가능하다’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네온은 최근엔 배급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슬픔의 삼각형’은 2017년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의 차기작이라 경쟁이 심했지만 결국 네온이 따냈다. 퀸은 “우리는 배급자가 아닌, 감독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퀸이 꼽은 최고의 순간도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날 밤 한인타운에서 ‘기생충’ 팀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팀이 함께 축하 파티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