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 인도 ‘어린이집 앞 흡연 그만, 아이들이 창밖을 보고 흡연을 흉내 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주변 직장인 10여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 인도. 마스크를 내린 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10여 명 뒤로 플래카드가 보였다. ‘어린이집 앞 흡연 그만, 아이들이 창 밖을 보고 흡연을 흉내 냅니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LG광화문어린이집 최형선(54) 원장은 “하루 종일 주변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여기 모여서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아이들이 ‘우리 아빠는 안 피우는데 저 삼촌들은 왜 피우지?’라고 물어요. 담배 피우는 흉내도 내고요. 어린이집은 의무적으로 하루 최소 4번 외기(外氣) 환기해야 하는데, 바람을 타고 담배 연기가 들어와 창문을 열 수도 없어요. 구청에 금연구역으로 지정해달라 요청하니 ‘어린이집으로부터 거리가 10m 이내가 아니라 안 된다’고 해요. 초·중·고는 출입문에서 50m 이내인데 왜 어린이집은 고작 10m인가요.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에 수시로 거리로 나가 담배꽁초를 주우면서 ‘아이들 위해 여기서는 피우지 말아 달라’ 부탁드려요. ‘피울 데가 없어서 그런다. 죄송하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다 피우고 갈 것’이라며 화내는 분도 있죠. 그래도 아이들이 걱정돼 그만둘 수가 없어요.”

광화문 일대에서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건 이곳만이 아니다. LG빌딩에서 200m 떨어진 S타워 앞 인도에도 50여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행인들이 눈살 찌푸리며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종로 SK서린빌딩 옆 공원 골목길도 흡연자들로 빽빽했다. 맞은편 르메이에르종로타운 건물 뒤편 인도 약 50m 구간에선 40여 명이 담배를 피웠다.

◇코로나 끝나고 심해진 간접흡연 피해

코로나 단계적 일상 회복 이후 재택근무하던 직장인들이 속속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광화문·테헤란로·여의도 등 직장가 인도와 골목이 ‘자체 흡연구역’이 됐다. 행인들과 자영업자들의 간접 흡연 피해 호소도 커지고 있다.

광화문 직장인 김모(45)씨는 “점심 먹으러 나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간접흡연을 몇 차례나 하는지 모른다”며 “이제 바깥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지만, 코로나가 아니라 담배 연기가 괴로워 벗지 않는다”고 했다. 한 구둣방 주인은 “코로나 이전보다 담배 연기가 심해져 구둣방 안에 앉아 있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이에 대해 흡연자들은 “담배 피울 곳이 없다”며 불만이다. 여의도 직장인 이모(37)씨는 “예전에는 회사 건물 지하에 흡연실이 있었는데, 재택근무 마치고 지난달 출근해 보니 흡연실이 없어져 할 수 없이 길거리로 나온다”고 했다.

7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S타워 앞 인도에서 주변 직장인 50여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기준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28만8961개소. 2011년까지만 해도 서울시 공식 지정 금연구역은 구로구 ‘아트밸리길’과 ‘걷고싶은거리’ 등 2곳에 불과했는데, 2012년 ‘금연환경 조성 및 지원’ ‘간접흡연 피해 방지’ 등 금연 정책 관련 조례를 구청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면서 현재 금연구역의 99% 이상이 생겨났다.

반면 흡연구역은 금연구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8년 12월 서울 시내 흡연구역은 6200여 곳. 금연구역의 2%다. 정확한 숫자도 아니다. 흡연구역이 몇 개인지, 어디에 있는지 현황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나 각 구청의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는 공중 이용시설에 금연구역 설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 반면, 흡연구역은 금연구역을 설치한 장소에 흡연자를 위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흡연구역 설치가 필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은 2018년보다 흡연구역이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과 대형 오피스 건물들이 자체 운영하던 흡연공간을 코로나 등을 이유로 잇따라 폐쇄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오피시아빌딩은 지난해 건물 내 흡연 공간을 없앴다. 오피시아 관계자는 “화재 신고가 들어올 정도로 담배 연기가 심했고 꽁초와 침 때문에 청소도 어려웠다”며 “화단 공사를 하면서 흡연 공간을 아예 없앴다”고 했다.

◇금연구역보다 흡연구역 지정해야

흡연단체와 금연단체는 “금연 대신 흡연구역을 설정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국민건강증진법은 금연구역을 지정했지만 흡연구역은 따로 정하지 않고 있어, 금연구역이 아닌 곳은 모두 흡연구역이 된다. 지자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곳 이외에는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다. 길거리 흡연을 처벌할 조항도 없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이연익 대표운영자는 “지금처럼 금연구역을 지정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금연으로 하고, 대신 흡연구역을 만들어주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서초구 시도를 모범 케이스로 지목했다. 서초구는 2020년 11월 전국 최초로 지역을 통째로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동시에 주민들이 자주 담배 피우는 장소에 흡연구역을 설치했다. 이 대표는 “양재동에는 40여 개 흡연구역이 지정돼 있다”며 “간접흡연 피해 민원이 크게 줄었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이성규 센터장은 “정책이 너무 빨리 갔다”고 했다. “한국은 흡연 인구가 35%나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흡연구역을 설정해 간접흡연 피해를 줄여야 해요. 그러면서 전 세계가 가고 있는, 담배를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