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도지사 후보입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책! 비전! 자질! 능력! □□□가 이깁니다.’ ‘이념편향 OUT 교육은 희망! 교육은 약속! 경기교육감 후보 △△△!’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남모(37)씨는 선거 홍보 문자 메시지를 하루 10여 통씩 받고 있다. 그는 선거운동 전화와 여론조사 전화도 매일같이 걸려온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는 “선거가 중요한 건 알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전화·문자를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전국 팔도에서 연락이 오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가운데, ‘선거 공해’의 고통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다. 홍보 문자·전화 폭탄, 유세로 인한 소음, 현수막·벽보 등으로 인한 도시 미관 저해 등이 이에 속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
현행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다. 문자 발송 시스템을 사용한 대량 문자 발송 횟수는 최대 8회로 제한되지만, 개인 자격으로 보내는 문자에는 횟수 제한이 없다.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활용한 투표 독려 전화는 무제한 가능하다. 불법적으로 유권자들의 전화번호를 수집하거나, 수신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
인천의 한 맘카페에는 21일 선거운동 전화를 성토하는 글이 올라왔다. ‘쉬는 주말 일방적 선거운동 전화는 아닌 것 같다. 전화한 그분(후보) 안 찍는다.’ 이 글에는 ‘거래처인 줄 알고 받았더니 녹음기(ARS)’ ‘밤 9시 넘어서도 오더라. 진짜 미쳤구나 싶었다’ 등의 공감 댓글이 달렸다. 세종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안모(63)씨는 “모르는 번호이지만 혹시나 손님 전화일까 싶어서 받았더니 광주 교육감 후보, 인천의 한 구청장 후보더라”며 “받는 사람도, 거는 사람도 다 시간 낭비 아니냐. (후보들이) 해당 지역민한테만 연락할 수 있게 조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접수된 선거 문자 수신 관련 개인정보 침해 상담 건수는 2만1216건에 달했고, 선거 홍보 문자 약 45만건이 스팸으로 신고됐다. 하지만 선거 문자는 정보통신망법상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118(KISA 상담센터) 등에 신고를 한다 해도 불법 스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선거 문자나 전화를 피하려면 일일이 해당 번호들을 차단하거나 문자에 첨부된 080 수신 거부 번호에 전화하는 수밖에 없다.
◇전투기 소리보다 시끄러운 유세 소음?
유세 차량이 쏟아내는 소리도 괴롭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 앞이나 사거리 같은 곳에서 후보자가 대형 유세 차량에 올라 유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성기를 단 작은 트럭이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로고송이나 녹음된 연설을 트는 경우도 많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주부 김모(33)씨는 “낮에 아파트 바로 앞에서 유세 차량이 노래를 틀어 아기가 잠에서 깼다. 트로트 ‘한잔해’를 개사한 로고송을 반복해서 트는데 너무 시끄러웠다. 이게 정말 득표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국회는 지난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운동 소음 규제 기준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라 유세 차량에 부착한 확성장치는 정격출력 3㎾, 음압수준 127㏈을 초과하면 안 된다. 대통령 선거와 시·도지사 선거 후보자용은 정격출력 40㎾, 음압수준 150㏈까지 허용된다. 하지만 소음 허용 한도가 너무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용 한도인 음압수준 127~150㏈은 전투기 이착륙 소음(약 120㏈)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의 한 기초의원 후보 A씨는 “시끄럽게 하면 표를 안 주겠다는 분들도 계셔서 빈 유세 차량에서 노래 트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면서도 “지방선거는 (후보)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게 정말 중요한데, 나만 선거운동을 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길거리에 덕지덕지 나붙은 현수막
경기도 구리에 사는 직장인 이모(40)씨는 요즘 밖에 나갈 때마다 곳곳에 붙은 선거운동 현수막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지하철역 앞에 걸린 현수막이 자그마치 12개나 되더라. 도시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위험하게 느껴졌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선거운동) 명함도 문제다. 선거가 자원 낭비, 환경오염의 주범인 것 같다.”
중앙선관위와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 사용된 현수막은 13만8192개. 현수막 1개당 길이를 10m라고 가정했을 때, 이를 전부 이어붙이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 도쿄 나리타국제공항까지 연결할 수 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현수막(9220t) 중 3093t(33%)만이 재활용됐다. 최근에는 건물 전면을 감싸는 규모의 대형 현수막을 게시하는 후보들도 많아졌다. 녹색연합은 “투표 독려 현수막, 선거사무소 현수막은 관리의 사각지대로 얼마나 발생하는지 자료조차 파악이 안 된다”며 “국민 세금으로 보전하는 선거홍보물은 쓰레기가 남지 않는 홍보물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거운동 기간이 짧고, 후보가 유권자를 만나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후보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집중적으로 현수막을 달고 유세차를 운영하는 식의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유권자와의 접촉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거운동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선거 공해 문제는 반복될 것이고,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피로감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지면서, 몇몇 후보들은 소음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확성기 없이 정당명과 기호, 후보 이름만 도장된 경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구의원 후보, 현수막 없이 종이 피켓을 이용해 기자회견을 하는 도지사 후보, 선거 운동원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 도의원 후보 등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