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는 회사 근처 북엇국집엔 늘 세 가지 반찬이 준비돼 있다. 배추김치, 부추 무침, 그리고 오이지다. 그 가운데 오이지가 가장 맛있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약간 달큼하고 삼삼한 맛이다. 북엇국이 생각날 때 가기도 하지만 오이지를 먹고 싶어 갈 때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더워지기 시작할 때는 북엇국이 아니라 찬물에 밥 말아 오이지 하나로도 맛있는 점심이 될 것 같다.
얼마 전 강원도에 갔다가 강가에서 넓적한 돌 하나를 주워왔다. 오이지를 한번 담가볼 생각이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오이지를 담글 때 오이가 소금물에 뜨지 않게 하려고 돌로 눌러놓으시던 걸 떠올렸다. 반찬 가게에서 파는 오이지 무침은 너무 짜거나 달아서 북엇국집 오이지처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매년 이맘때부터 장마 전까지가 오이지 담그는 시기라고 한다. 장마 후엔 오이에서 쓴맛이 나고 물러진다. 시장에 가보니 아예 오이지용 오이가 따로 있었다. 보통 오이보다 작고 단단해서 쉬 무르지 않고 아삭거린다고 했다. 오이지는 한 번에 많이 절여두고 먹는 반찬이어서 그러는지 접 단위로 팔았다. 채소 한 접은 무려 100개. 반 접도 너무 많을 것 같아 선뜻 사지 못했다.
오이지는 그 소박한 맛에 비해 만드는 데는 무척 공이 많이 드는 음식이었다. 소금물을 끓여 부어주고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소금물을 따라서 다시 끓인 뒤 식혀서 부어주는 식의 정성이 필요하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만드는 과정이 긴 음식은 그만큼 실패하기도 쉽다. 전업주부라 해도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야 제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나 같은 초짜는 무조건 처음엔 실패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이 무침처럼 그냥 고춧가루와 액젓 넣고 휘휘 무치는 반찬과는 급이 다르다.
오이지 만들기를 포기하자 오이지가 더 먹고 싶어졌다. 오이지 무침은 물론이고 오이지 냉국도 생각났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절여놓은 오이지 파는 것을 발견했다. 다섯 개에 3000원이었다. 이거네, 프로가 담근 오이지를 사다가 무치기만 하면 되는 오이지 밀키트네. 냉큼 들고 왔다. 아주머니는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 짠맛을 빼라고 했다.
그 오이지는 먹을 수 없을 만큼 짰다. 아마 찬물에 한 시간 넘게 담가둬야 할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발효 음식 밀키트가 그리 쉽게 맛을 내겠어. 나는 다용도실 구석에 앉아있는 돌멩이를 쳐다보았다. 돌멩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야, 너도 오이지 담글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