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이 한 것 같다’ ‘대형 기획사라 봐주기인가’.
최근 주요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는 가수 임영웅 팬들의 항의 글이다. 지난 13일 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이하 뮤뱅)에서 임영웅이 1위 경쟁에서 떨어지자 일부 팬을 중심으로 “석연찮은 기준으로 1위를 놓쳤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임영웅은 최근 발표한 정규 1집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로 뮤뱅 1위 후보에 올라 음원·음반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방송 횟수에서 ‘0점’을 받으며 총점 7035점으로 7881점을 받은 걸그룹 르세라핌의 ‘피어리스(FEARLESS)’에 밀려 2위에 그쳤다. 시청자·팬들은 다른 부문에선 압도적으로 앞선 임영웅이 20% 비율의 방송 횟수 점수에서 1점도 얻지 못한 것을 두고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르세라핌이 방탄소년단(BTS)이 있는 하이브 소속 그룹이라는 점 때문에 KBS가 대형 기획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일부 팬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뮤뱅에 대한 심의를 요청하고,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를 요청했다.
임영웅 ‘빵점’ 굴욕 어떻게 나왔나
이번 뮤뱅 논란의 핵심은 임영웅의 방송 횟수 점수, 이른바 ‘방점’이 ‘빵점’이 나왔다는 점이다. 뮤뱅은 디지털 음원(전체 점수의 60%), 방송 횟수(20%), 시청자 선호도(10%), 음반(5%), SNS(5%)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KBS에 따르면 임영웅은 디지털 음원(1148점)과 음반 점수(5885점)에서 1위 경쟁 상대인 르세라핌을 크게 앞섰지만 방송 점수는 0점이 나왔다. 반면 르세라핌의 방송 점수는 5348점이었다.
방송 횟수는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횟수를 집계해 점수화한다. 문제는 KBS가 TV·라디오·유튜브 중 매체별 방송 횟수, 출연 횟수가 어떤 비율로 방송 점수에 반영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가요계에서는 ‘라디오 등에서 가수의 노래가 얼마나 흘러나왔는지보다 TV·유튜브에 얼마나 자주 출연했는지가 방송 점수를 따는 데 더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방송사에 ‘얼굴 도장’을 자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뮤뱅의 순위 집계가 이뤄진 기간에 르세라핌은 KBS의 유튜브 콘텐츠 ‘리무진 서비스’(3일), ‘아이돌 인간극장’(7일)에 출연한 반면, 임영웅은 KBS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의 새 앨범이 나오면 뮤뱅 순위 집계 기간을 고려해 TV와 유튜브 프로그램에 우선적으로 출연시킨다”고 밝혔다.
방송 점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최근 일부 음악방송에선 방송 점수 비율을 줄이는 추세다. 하지만 KBS(총점의 20%)는 방송 점수를 MBC·SBS(총점 10%)보다 두 배 높게 반영한다. 급기야 지난 15일 KBS 시청자권익센터 홈페이지에는 방송 점수 제도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뮤직뱅크 방송 횟수 제도 공개 및 KBS 감사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뮤직뱅크가 방점뱅크(방송점수뱅크)가 될 판인데, 방송 출연 횟수라면 거대 기획사의 영향력으로 늘릴 수 있는 것이어서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글은 25일까지 1899명이 동의했다.
화 부른 KBS 엉터리 해명
뮤뱅 제작진은 임영웅 논란이 불거진 뒤 해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팬들의 화를 키우고 있다. 뮤뱅 제작진은 지난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13일 방송) 순위의 집계 기간은 2022년 5월 2일부터 8일까지”라며 “해당 기간에 집계 대상인 KBS TV, 라디오, 디지털 콘텐츠에 임영웅의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방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팬들은 “KBS가 밝힌 집계 기간에 임영웅 신곡이 다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됐다. 엉터리 해명”이라며 비난했다. 실제 임영웅의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KBS가 밝힌 방송 횟수 집계 기간에 쿨FM ‘설레는 밤 이윤정입니다’(5월 4일) ,해피FM ‘김혜영과 함께’(5월 7일) 등 주요 KBS 라디오에서 방송됐다.
사태가 ‘거짓 해명’ 의혹으로 번지자 뮤직뱅크 측은 “방송 점수 중 라디오 부문은 KBS 쿨FM의 7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집계하고, 이 외의 프로그램은 집계 대상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며 다시 입장을 밝혔다. KBS는 라디오 방송이 쿨FM을 비롯해 1라디오, 해피FM, 3라디오 등이 있는데 특정 프로그램에서만 방송 횟수를 집계한다는 것이다. KBS 측은 “특정 음원 송출을 요구하는 외부의 영향이 있을 수 있어 라디오 프로그램명 등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구체적인 방송 점수 집계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임영웅 팬이라고 밝힌 박선경(51)씨는 “KBS가 밝힌 집계 기간에 라디오 방송에 (임영웅 신곡이) 분명 나왔는데 0점이 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특정 라디오 프로에서는 선곡표에 임영웅 곡이 사라졌다가 다시 표기되는 등 이해 못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KBS가 뮤뱅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논점과 맞지 않는 해명을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KBS 예능센터 한동규 CP는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에 “KBS 국민 패널 1만76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중가요 선호도 조사에서 임영웅의 곡은 응답률 0%의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임영웅 팬클럽 회원인 김미진(45)씨는 “신곡이 나온 첫 주엔 시청자 선호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1위 후보였던 르세라핌도 똑같이 이 부문에서 0점을 받았는데 KBS가 마치 임영웅 신곡만 0점인 것처럼 해명한 건 답이 될 수 없다”며 “KBS는 이번 사안에 대해 시청자들이 왜 공분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임영웅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했다.
가요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음악방송이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도록 여러 지표를 고르게 반영하고, 집계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는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특정 부문 점수가 다른 점수를 압도하는 현재 시스템은 문제가 많기 때문에 여러 점수를 균형 있게 반영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