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분식집처럼 라면 끓이는 법’이 있기에 따라해 봤더니 정말 처음 먹어보는 라면 맛이 됐다. 조리법의 핵심은 식초와 설탕, 그리고 미원을 넣는 것이었다. 라면 특유의 맵고 칼칼한 맛이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맛이 뾰족해졌다고 할까, 이런 맛을 감칠맛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미원은 한때 모든 가정의 필수 조미료였다가 어느새 건강식의 대척점이자 싸구려 맛의 상징이 돼버렸다. 그러나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미원과 그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나트륨이 건강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굴 소스나 치킨 스톡을 요리에 쓰면 센스가 있는 것 같고 미원을 쓰면 미련해 보인다. 셋 다 글루탐산나트륨이 주요 성분인데도 말이다.
10여 년 전 어떤 선배가 퇴직 후 칼국수 집을 차렸는데 정성을 들여도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 선배는 줄 서서 먹는다는 다른 칼국수 집을 찾아가 비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랬더니 그 집 주인이 1000만원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큰맘 먹고 수표를 끊어 다시 간 선배에게 그 집 주인은 A4 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 뒤로 선배네 칼국수 집도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선배는 1000만원짜리 비법이 뭔지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모두 “아마도 ‘미원’ 두 글자가 쓰여 있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요리사 백종원은 미원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옹호론자다. 그는 볶음밥을 할 때 “미원을 팍팍 넣으면 중국집 볶음밥 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의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그런 조리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 같다. 모든 음식이 매콤새콤하고 달콤짭짤하다.
오래전 뉴욕에서 연수할 때 후배들을 초대해 닭볶음탕을 해준 적이 있다. 조리법대로 했는데도 어째 국물이 텁텁하고 밋밋해서 미원을 조금 넣었더니 맛이 쨍하게 도드라졌다. 후배들은 이렇게 음식 솜씨가 좋은 줄 몰랐다며 맛있게 먹었다. 미원은 ‘어쩌다 한번’일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낸다.
미원은 맛에 공격성을 불어넣는 조미료 같다. 된장과 채소, 멸치로만 낸 국물은 스트레스를 빠르게 풀어주지 못한다. 국밥 한 그릇 후딱 들이켜고 다시 일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사람들에겐 좀 더 뾰족하고 쨍한 ‘연료’가 필요하다. 레드불이나 몬스터 같은 고카페인 음료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불난 속을 불로 다스리려고 불닭 같은 음식이 나온 것 아닐까.
우리 집에도 미원이 있지만 잘 쓰지 않게 된다. 어느덧 소박하고 거친 맛에 더 끌린다. 속에서 열불 날 일이 적어지니 불맛으로 다스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