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여섯 사람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 미국 출신 조지 시걸(Segal)의 작품 ‘러시아워’입니다. 인물 모두 하나같이 무겁고 진지한 표정입니다. 현대인의 삶의 고단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 삶의 무게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에 숙연해지고 그래서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됩니다. 육체는 덧없다고 본 탓인지 다 털어 내 버리고 뼈만 앙상한 2미터 큰 키의 여인 조각상, 스위스 출신 알베르토 자코메티(Giacometti)의 작품 ‘거대한 여인 Ⅲ’입니다.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이 겪은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표현했다지만 인간은 그렇게 위태롭고 나약한 존재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단정하고 당당한 모습과 제목에 포함된 ‘거대한’이라는 표현이 이를 말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러스트=김영석

얼마 전 봄꽃들이 다투어 피는 전남 광양시를 다녀왔습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전시회(5월 29일까지)를 관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에서 지금 앞서 소개한 두 작가 외에 앤디 워홀, 이브 클랭, 데이미언 허스트 등 현대미술 거장과 이불, 정연두, 이건용 등 한국 작가 40여 명의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작년 10월 리움미술관이 재개관하면서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명해볼 수 있도록 기획한 전시회를 지역 주민들도 그대로 감상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기 위한, 이른바 리움미술관 지역순회전입니다. 리움미술관으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일입니다. 온 국민이 문화를 함께 향유하며 문화 측면의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작년에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가운데 전남 출신 작가 김환기, 오지호, 천경자 선생 등의 작품 20여 점을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하여 그 기념으로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그 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이 찾아와 관람하였답니다.

저는 리움미술관, 호암미술관 운영 등 문화사업을 관장하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지역 문화 현장의 실상이나 애로 등을 확인해보고 장래 계획에 참고하고자 전남도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작품들은 서울에서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신기하였습니다. 이지호 관장님은 작년에 신설 개관한 도립미술관이 이런 행사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그 존재와 활동 상황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전남도립미술관이 도청 소재지인 무안이나 인근 목포, 아니면 상대적으로 큰 도시인 순천이나 여수가 아닌 동쪽 끝 광양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물론 일본의 나오시마 미술관이나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입지 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도 훌륭한 미술관이 세워지고 그로 인해 그곳이 융성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낯섭니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도심에 미술관을 둘 수도 있지만 문화를 즐기기 위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시민이 많아지는 문화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광양의 사례가 반가웠습니다. 알아보니 전라남도에서 동부 지역에 대한 배려로 합당한 논의와 절차를 걸쳐 결정하였고, 그런 만큼 도립미술관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각별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근자에 순천만, 낙안읍성, 오동도, 예울마루, ‘여수 밤바다’를 찾아 순천, 여수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여행길에 들르는 전남도립미술관은 또 다른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