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들이 인기 드라마와 영화를 인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번 경기지사 선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인용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왼쪽)와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인용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Jtbc·tvN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는 대사들을 모은 영상을 봤습니다. 하나하나 경기도민의 애환이 묻어납니다. 경기도에 변화의 바람을 만들겠습니다.”(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저 김은혜, 배낭에 희망을 가득 담아 경기도민 한 분 한 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우리들의 경기도 블루스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

6·1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인 경기도에서 여야 후보들이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를 인용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김동연 후보의 선택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김은혜 후보의 선택은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TV 화제성 분석 업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4월 2주 TV드라마 화제성 부문에서 두 작품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남쪽 끝에 사는 삼남매가 무기력한 삶에서 해방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 서울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경기도민의 고충도 담긴다. 김동연 후보는 이 드라마를 언급하며 “경기도민에게 (출퇴근 시간) 하루 2시간을 돌려주고 싶다”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제를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경기 중심의 생활 변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은혜 후보가 인용한 ‘우리들의 블루스’ 기획 의도는 ‘삶의 끝자락, 절정 혹은 시작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의 달고도 쓴 인생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김 후보 측 박기녕 대변인은 “김은혜 후보가 공정과 상식의 경기도를 만들어 모든 경기도민의 삶을 응원하면서 도민과 함께 호흡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메시지가 된 드라마·영화 대사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들이 정치적 메시지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유권자들 표심을 파고들어야 하는 선거나, 국민들 눈길을 끌 수 있는 국정감사 등에 드라마·영화를 활용하는 정치인들이 급증했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적극 활용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포스터(위 사진). 아래는 여권 인사들이 ‘검찰 개혁’을 주장하며 인용한 tvN 드라마 ‘비밀의숲’ 포스터다. /넷플릭스·tvN

지난 대선을 달군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는 대사를 인용해 “우리는 모두 장기판 위 말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깐부’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경선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던 홍준표 의원을 향해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고 했고, 청년들의 지지 소식을 전하며 “여러분께 다가가는 ‘깐부’ 석열이형이 되겠다”고 했다. 이 밖에 안철수 후보는 “우리나라가 재미없는 지옥, 헬조선, ‘오징어 게임’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고 하는 등 인용이 넘쳐났다.

군대 내 부조리를 담아낸 드라마 ‘D.P.’도 관심을 끌었다. “모욕과 불의에 굴종해야 하는 군대, 군복 입은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 반드시 바꿀 것”(이재명), “나라를 지키려고 간 군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그런 일(가혹 행위)을 당한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서 일당백의 강군을 만들기 위해 모병제와 지원병제로 전환을 검토한다고 공약했다”(홍준표) 등의 발언이 나왔다.

영화를 관람하고 메시지 내는 것을 대선 주자의 공식 일정으로 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원전 재난을 다룬 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고 나서 “원전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1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돈 크라이 마미’를 본 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21대 국회에 등장한 드라마·영화 30편 넘어

검찰 소재 드라마 ‘비밀의숲’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자주 인용한 드라마였다. 특히 2020년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속한 출범을 촉구하는 데 활용됐다. 이재명 고문은 “극 중 이창준 검사와 황시목 검사의 고뇌 양상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검찰개혁을 이뤄냈다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당시 법사위원장)은 “이번 국감을 통해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 많은 분이 공감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다’는 대사를 인용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다른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데 드라마·영화를 활용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작년 8월 ‘We salute the rank, not the man(우리는 지위에 경례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경례하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러더스’의 대사를 인용해 게재했다. 자신을 ‘철부지 애송이’라 지칭한 국민의당 관계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같은 해 9월 김기현 당시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사립학교법을 비판하며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인용했다. “친정권 사람들 발밑에서 악취가 올라오고 있는데 왜 엉뚱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 사학에 책임 넘기고 팔을 비틉니까? 영화 대사 속에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2020년 7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회의실에는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란 문구가 적힌 백드롭(배경 현수막)이 등장했다. 임대차 3법 등 여권의 부동산 정책 밀어붙이기를 비판한 것으로, 드라마 ‘스카이캐슬’ 대사를 인용한 것이다.

21대 국회(2020년 6월~2022년 4월)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등에 인용된 드라마는 30편이 넘는다. 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작년 2월 국토위 회의 때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인용하며 “최고 인기 드라마 속의 에피소드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온다는 건 현재 국민의 관심과 우려가 크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작년 11월 외통위 회의에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언급하며 국군 포로들에 대한 실태 조사와 명예회복 조치를 촉구했다. 이 밖에 ‘스타트업’ ‘왕좌의 게임’ ‘화차’ ‘공작’ ‘변호인’ ‘기생충’ 등 다양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정치인이 공개 발언에 넣을 드라마나 영화를 선택할 때는 ‘어떤 이미지를 줄 수 있나’ ‘어떤 메시지를 낼 수 있나’를 면밀히 검토한다”며 “인기가 많은 드라마·영화 얘기를 하면 대중이 한 번이라도 (해당 메시지를) 더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 자체가 선거운동, 자기 PR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