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역 3번 출구 아래 노숙인들이 비닐 천막을 짓고 살고 있는 모습. 생활 쓰레기가 오물과 함께 산처럼 쌓여있다. /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역 아래 한 ‘마을’이 있다. 3번 출구 ‘달주차장’에서 이어진 교량을 150m 걷다 보면 보이는 샛길이 입구다. 마을로 가는 길은 표지판 대신 특유의 냄새가 안내한다. 집 역할을 하는 비닐 천막 사이 소변 젖은 흙, 폐비닐과 소주병이 뒤섞여 무덤처럼 솟아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검은 고무줄엔 한겨울용 패딩 점퍼와 담요가 널려 있다. ‘용산역 텐트촌’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스물다섯 명의 사람이 천막을 지어 산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라 불리는 곳,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기대감이 더 커진 용산구 이면에 노숙인들의 텐트촌이 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째 천막살이 중인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용산역과 인근 호텔을 잇는 보행교 설치로 이곳에 있는 몇몇 천막이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들은 왜 ‘쪽방’ 하나 얻지 못한 채 이곳에서 수년째 살고 있을까. 지난 19일 <아무튼, 주말>이 이곳 주민들을 만났다.

◇역 화장실 수돗물 끓여 식수 해결

한국철도공단 소유 부지인 이곳은 길과 펜스를 경계로 총 3개 구역으로 나뉜다. 구역별로 6~7개의 천막이 5m 간격으로 위치해있다. 지하철역 화장실 외에 이들이 씻을 공간은 없다. 교량 아래 사는 정모(52)씨는 텐트 옆에 2L짜리 페트병 8개를 쌓아 뒀다. 정씨는 “손발만 간단히 씻지 몸은 거의 못 씻는다. 마실 물은 화장실에서 받아와서 끓여 먹는다”고 했다.

옆 구역엔 1평짜리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키우고 있는 50대 김모씨가 보였다. 3년 전까지 대형트럭 운전수로 일했던 김씨는 사고를 당한 뒤 병원비를 충당하려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평일에는 교회에서 주는 도시락, 주말에는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죠. 화요일 저녁 성당 신부님 말씀 들으면 1000원, 일요일 교회 설교 들으면 1000원. 그 돈 모아서 모종 심었어요.”

그나마 이곳은 상황이 나은 편. 부탄가스 용기 200여 개가 버려진 곳 옆에서 농사용 비닐만 덮고 지내는 노숙인도 있다. 식사를 방금 마친 듯 양은 냄비와 김치 통이 바닥에 나와 있었다. 그 옆에 쥐를 쫓는 약품과 이를 주의하라는 작은 팻말이 보였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A씨는 “대통령이 오든 총리가 오든 언젠가는 떠나야지. 그래도 미리 얘기만 해주면 좋겠어.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불안해서….”

◇갑자기 날아든 주거 이전 계고장?

텐트촌을 가로지르는 보행 육교가 설치될 거란 계획은 2016년부터 나왔다. 용산역과 드래곤시티호텔을 연결하는 육교다. 하지만 이 공사로 텐트촌 주민들이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최근 들어서야 알려졌다. 지난달 말 시공사로부터 이달 15일까지 텐트를 치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재 ‘구름다리’로 불리는 곳 아래에 보행 육교 기둥 설치를 위한 말뚝이 박혀있는데, 인근의 텐트 4개가 이전 대상이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작년 12월 용산구청장까지 참석해 보행교 착공식을 열었는데, 정작 주민들은 공사 4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주거지를 잃을 처지인데, 주민들은 이전과 관련해 어떤 협의가 가능한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용산구청은 당장 텐트를 철거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장소로 이주시킬지 고심 중이다.

설혜영 정의당 용산구의회 의원은 “이곳 노숙인들이 주거취약계층으로서 임대주택 공급 대상이 되는지 용산구청이 국토부 측에 질의를 한 상황이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계속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이들 대부분은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살다가 다시 텐트촌으로 돌아온 이들이다. 경제적 어려움 탓이기도 했지만, 집주인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김씨는 “고시원은 방음이 안 되니 마음대로 기침도 못하고, 조금만 왔다갔다 해도 민원이 들어온다. 하도 옆에서 불만이 많으니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결국 주인이 나가 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 탓에 텐트촌 주민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도 없다. 안형진 활동가는 “주소지가 없으면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저소득층 구제 대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주소지를 중심으로 한 현행 복지 제도의 허점”이라고 말했다.

일을 구해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느냐고 김씨에게 물었다. “막일이라도 하려고 시도 안 해본 사람 여긴 없어요. 바닥에서 살다보니 이름 모를 병이란 병은 다 걸리고, 멀쩡했다가 하룻밤 새 죽어서 실려 간 사람도 있죠. 하루 고되게 일하면 일주일은 앓아요. 근데 몸 아픈 것보다 나는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아파요. 그래도 당장 쫓겨나진 않겠다는 마음에 안심은 돼요. 곧 구청장이니 구의원이니 선거한다는데, 우리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