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채 만들기가 쉬울 것 같아 소위 인플루언서 조리법을 따라 했다가 망쳤다. 짜고 맵고 퍽퍽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 블로그에 나온 대로 저울도 갖다놓고 계량 숟가락까지 동원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그랬다. 맛만 없는 게 아니라 결과물의 모양도 달랐다. 블로그 사진은 밥 한 공기에 무생채 한 공기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발갛고 촉촉했는데 내가 만든 무생채는 김장 담그려고 만들어둔 김칫소 같았다.
동네 백반 집에 갔다가 반찬으로 나온 무생채가 맛있기에 주인 아주머니께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직접 무치시게? 그냥 마나님한테 해달라고 하셔. 그건 뭐 어떻게 만든다고 할 수가 없어요. 뭐뭐 들어간다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그래서 뭐뭐가 뭐냐고 물었더니 고춧가루·식초·설탕·간마늘·소금·파·참기름·통깨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그렇게 넣고 무쳤는데 맛이 없다고 했더니 줄곧 도마와 냄비를 오가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별일 다 있네 하는 얼굴이었다. “고춧가루는 색만 내는 거예요. 빨갛게 무치려면 많이 넣고 희게 무치려면 적게 넣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넣고 나서 간을 봐야지.”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더니 “적당히”라고 했다. 적당히가 얼마큼이냐고 물으면 “어느 정도”라고 할 것 같아 그만뒀다. 그 대신 무생채 담가둔 것 있으면 좀 파시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쏘아붙였다. “손님상 나갈 것도 없어요.”
무를 채 썰고 고춧가루를 백반 집 무생채 색깔이 날 만큼만 넣어 버무렸다. 나머지 양념은 숟가락으로 계량하지 않고 그냥 왠지 그만큼 넣어야 할 것 같은 정도만 넣고 무쳤다. 보기가 그럴듯했고 맛도 이전보다 훨씬 나았다. 맨입에 먹어도 짜지 않고 약간 달콤시큼했다. 보리밥에 넣고 참기름 몇 방울, 계란 부침만 넣으면 훌륭한 비빔밥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백반 집 무생채보다는 못했다.
다시 그 백반 집에 간 건 꼭 무생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엔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붙였다. “어째, 맛이 있습디까?” 지난번보다는 훨씬 나아졌는데 사장님 무생채 맛은 안 난다고 했더니 껄껄 웃었다. “내가 밥 장사를 몇 년 했는데 홀아비 손맛이 그렇게 쉽게 따라오겄어요?” 그러더니 이랬다. “무채를 무칠 때 손에 쥐지 말고 살살, 갈고리로 무채를 들어 올리듯이 무쳐야 돼. 그게 손맛이여.” 아, 그게 손맛이구나.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리고 저 홀아비 아니에요.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