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부르스코라고 아시는지. 레드 와인인데 스파클링 와인이다. 그리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 와인이다. 샴페인은 대개 드라이한 편이지만 람부르스코는 좀 달다. 그런데 터진다. 미국에서는 이 술을 코카콜라에 비유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코카콜라 이탈리아니’라고 한다고.
힘있게 팍 터지는 람부르스코의 기포를 그리워하며 찾아다녔다. 봄이라 생각하니 그랬다. 아직 화이트 와인을 마시기에는 이르고, 이제는 좀 레드 와인이 아닌 다른 걸 먹고 싶어서. 꽃망울이 팍 하고 터지는 걸 못 보니 와인이라도 팍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까.
이맘때면 생각나는 슬픈 추억을 말해야겠다. 십 년도 더 된 일 같은데, 소박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혼자 차를 몰고 국내를 돌려고 했다. 전국 일주 같은 건 아니고 남해로 내려가 다시 위로 올라오는 아주 느슨한 일정이었다. 일단 남해로 가는 이유는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데가 남해였기 때문이다. 여수 향일암에서 동백을 보고, 순천에서 매화를, 보성을 들렀다 강진과 해남에 가서 또 꽃을 보고 그렇게 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꽃과 함께 북상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땅끝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올라왔다. 차를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은 좀 그랬다. 일인분은 잘 팔지도 않고,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신경 쓰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다 다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랬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동네가 바뀔 때마다 공기가 바뀌고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꽃이 바뀌는 풍광이었는데··· 고요한 감격 속에서 혼자 술을 마시려고 했었는데··· 감격은커녕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사흘 만에 올라왔었다. 꽃도 당연히 못 봤고.
4년 전, 이탈리아에서 그때 느끼지 못한 걸 느꼈다.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5일 정도씩 한 도시에서 머물렀는데, 아찔했다. 기차를 타고 한두 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정서가 완벽하게 달라져서. 로마가 위치한 라치오주에서 시작해 움브리아를 거쳐 토스카나, 에밀리아 로마냐, 피에몬테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웃음이 났다. 동네가 바뀔 때마다 풍경이 바뀌었고, 음식과 술도 달라졌다. 로마에서 시작해 기차를 타고 북상해 밀라노에서 끝내는 일정을 짤 때는 몰랐다. 그렇게까지 스펙터클할지.
도시의 건물을 이루는 색은 물론 사람들의 옷차림, 상점가를 이루는 구성의 비율이 달랐고, 무엇보다 음식과 술이 달랐다. 여기서 술은 와인이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주조하는 나라고, 지역마다 재배하는 품종도 다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와인은 술이 아니라 음식의 일부로 봐야 한다. 그런 느낌 아시는지? 음식만 먹으면 어딘지 부족했는데 술과 마시면 완벽해지는··· 이탈리아에서 한 달 있으면서 그런 순간을 많이도 만났다.
토스카나에서는 토스카나 와인을, 피에몬테에서는 피에몬테 와인을 마시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토스카나에는 거의 토스카나 와인만을, 피에몬테에서는 거의 피에몬테 와인만을 파는 데가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볼로냐 서점에서의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 요리책을 달라고 했더니 점원은 경직된 얼굴로 이탈리아 요리책이 없다고 했다. 응? 당황한 얼굴로 봤더니 하시는 말씀. 이탈리아 요리책은 없지만 볼로냐 요리책은 있다고. 그때 확실히 알았다. 볼로냐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그냥 볼로냐구나! 로마도 그저 로마, 피렌체도 그저 피렌체인 것처럼. 말로만 듣던 도시 국가의 흔적인가 싶었다. 그토록 강한 지역색이라니! 동네가 바뀐 게 아니라 나라와 문화권이 바뀐다는 느낌을 동네를 옮길 때마다 받았다.
지난주의 나는 봄의 이탈리아를 그리워하며 람부르스코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와인 가게 점원들은 람부르스코를 무시하는 듯했다. “람부르스코는···”이라며 이탈리아 와인은 바롤로나 아마로네 같은 고급 품종만 취급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해도 된다. 람부르스코는 애매한 술이다. 고급 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판매자 입장에서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도 이탈리아에서 람부르스코를 마셔보지 못했다면 이렇게 람부르스코를 찾아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볼로냐에서였다. 머물던 집 앞에 엄청난 식당이 있었다. 우연히 갔는데 뭐를 시켜도 맛있었고, 맛있음의 정도가 그냥 동네 식당 클래스가 아닌 집이었다. 나는 이 식당 때문에 맛집을 찾겠다는 의욕을 상실했다. 이곳의 음식을 다 먹고 싶다는 조바심만이 가득했다. 식당의 매니저는 내가 글라스 와인을 시키면 와인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부오나 세라(좋은 저녁!)”라거나 “투토 베네(다 괜찮은가요?)”라고 했다. 이분을 M이라고 하자.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에 마피아 조직원으로 출연해도 될 만큼 다크 포스가 있는 분이 M이었다. 이분이 하는 이탈리아어는 강렬했다. 잔에 와인을 콸콸 따르며 M은 말했다. “람부르스코” 듣자마자 매혹되었다. 부드럽게 시작하지만 이내 목을 긁을 정도로 떨리게 발음하는··· 거의 비브라토였으니 그럴 수밖에.
‘부오나 세라(Bouna Sera)’나 ‘투토 베네(Tutto Bebe)’ 같은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묘한 인사말인 줄 알았던 ‘람부르스코(Lambrusco)’는 볼로냐 지방이 속한 에밀리아 로마냐의 특산품인 와인이었다. 레드인데 스파클링인 와인. 그래서 잔에 따를 때는 넘칠 것 같지만 이내 거품이 사그라드는 와인. M은 거품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다시 따르기를 반복하며 잔에 람부르스코를 가득 채워주는 호탕한 분이셨다.
람부르스코를 구하지 못한 나는 뭐라도 해야겠어서 파바로티를 들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말이다. 어쩐지 파바로티의 비브라토를 들으면 람부르스코를 마시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언제 들어도 활달하고 유쾌한 파바로티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모데나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던 것이다. 모데나도 에밀리아 로마냐의 일부고, 그는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도 모데나 음식을 싸 가지고 다닌 걸로 유명하다. 토르텔리니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와 프루슈토를 왕창 비행기에 싣고 다녔다. 그러니까 만두와 치즈와 햄을 말이다.
나는 그가 분명 이것들을 람부르스코와 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데나 음식을 사랑하는 모데나의 아들인 그가 모데나 음식을 먹으면서 그쪽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모데나 사람으로서 말이 안 되지 않나 싶어서. 파바로티의 입만 보면 “람부르스코, 람부르스코”라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