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독립형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던 시절, 고가의 커피머신을 3대나 갖고 있었다. 상권이 직장가인 데다 장사꾼 초보 시절이라 ‘많이 갖다 놓으면 많이 팔릴 것’이라는 미련한 염원이 반영된 결과였는데, 좀 그럴듯해 보이기는 했다. 손님이 몰려 3대를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지만.
2년쯤 지났을까, 기계 한 대가 이상했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부에서 뭔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이다. 추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신경에 거슬렸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했다. 무상 AS(애프터서비스) 기간도 끝났겠다, 내 손으로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커피머신 깊숙한 곳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실수였다.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인류가 겪는 많은 문제는 지나친 자신감과 호기심에서 비롯한다.
뚜껑을 열자 엔진에 해당하는 부위가 보였다. 청결을 위해 원두 투입구와 추출구 쪽은 열심히 청소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저기 어딘가에 모터가 있을 거야. 잡음은 거기서 들리는 것이 확실해. 한 꺼풀 더 열려고 했더니 나사가 깊숙한 곳에 있었다. 날씬하고 기다란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메이드 인 저머니(Germany)’ 머신인데 분해가 쉽도록 만들었을 리 없지. 철물점에 달려가 새 드라이버를 샀다. 그곳을 열었더니 이번엔 특이하게 생긴 너트가 있었다. 다시 철물점으로 갔다. 간신히 풀었더니 낯선 유형의 볼트가 나왔다. 또 철물점으로 갔다.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열 수 있는 장비를 달라”고 했더니 철물점 주인이 금고털이범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봤다.
한나절 그렇게 끙끙거려 더 이상 분해할 것 없는 영역까지 도달했으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입바람만 후후 불어 내부를 청소하고는 다시 닫기로 했다. 그때부터 새로운 문제가 펼쳐졌다. 열긴 열었는데 닫지를 못하겠는 것이다. 군대에서 소총 분해와 조립을 배울 때, 분해만 가르쳐주고는, “조립은 분해의 역순입니다”라고 강조하던 신병교육대 조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얼마나 명언인가. 그래, 반대로만 하면 돼! 그런데 풀 때는 쉬웠던 것들이 닫을 때는 들어맞지 않는다. ‘이 나사가 여기 맞든가?’ 끼웠다 꺼냈다 조였다 풀었다 되풀이했다. 복잡계의 세상이 폭풍처럼 뇌리를 덮쳤다. 역시 독일은 위대한 민족이었구나.
결국 AS센터에 전화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상담원의 질문에 “모든 것이 문제”라고 했다. 총체적 난국. 출장 수리 기사님은 참혹한 해체의 현장을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하겠는지 멍하니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핵심 부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독일에서 부품을 들여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차라리 새 제품을 구입하시는 편이 나아요.” 그러고는 내부 케이스에 돋을새김으로 쓰여있는 문구를 가리켰다. “경고: 분해하지 마시오.” 독일인이여, 한글로 써놨어야 할 것 아닌가.
그날 이후 우리 편의점 커피머신은 2대가 됐다. 어차피 3대는 너무 많았어. 자신을 위로했다. 이참에 커피머신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게 됐잖아. 이게 다 ‘학습비용’에 해당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우리 편의점에서 내 별명은 ‘마이너스의 손’이다. ‘미다스의 손’ 반대 버전인데, 손대는 족족 망가뜨리거나 깨뜨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계산대에 있는 높낮이 조절 의자(일명 ‘미용실 의자’)가 약간 흔들리는 것을 고쳐보겠다고 나섰다가 새로 샀던 적이 있고, 온장고에 상품을 채워 넣다 유리문을 부순 적도 여러 번이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여닫이문을 깨뜨린 적도 있었지. 일부러 깨려 해도 잘 깨지지 않는 것들을 나는 간단히 깨뜨린다.
집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아들 녀석이 소중히 아끼는 장난감을 고쳐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가 방성대곡을 부른 적이 있고, 시계는 여러 개를 못 쓰게 만들었다. 며칠 전에는 실내 공기가 멀쩡한데 공기청정기가 자꾸 심하게 돌아가 센서 청소를 한다며 분해했는데, 역시 ‘분해의 역순’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센서는 깨끗해졌으나 전에 없던 모터 소리가 털털털 들린다. (다시 분해해봐야겠다!)
제법 봄바람이 분다. 테라스 있는 1층으로 이사를 해서 마침 화분 놓을 공간이 생겼는데 이참에 ‘식물 집사’로 거듭나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 남아난 화초도 없다. 지난겨울 추위와 목마름에 사망한 우리 집 선인장과 다육이 여러분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자란다는 아이들이 왜 내 손에만 들어오면 시들시들 쓰러지는 것인지…. 내 손목이 유일하게 창조에 기여하는 순간은 이렇게 글이나 쓰는 일인가 보다.
봄이다. 꽃씨를 뿌려야겠다. 봄이 와서 꽃을 심는 것이 아니라, 꽃을 심어 봄이 오는 거겠지. 이번만큼은 미다스의 손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