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경복궁 후원으로 만든 경무대(景武臺), 즉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백성과 임금이 만나는 소통의 마당이었다.”
청와대는 오랜 세월 최고 권력자의 공간이었다. 1868년(고종 5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궁궐 후원으로 조성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12명의 대통령이 관저와 집무실로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가 시작되는 5월 10일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청와대 터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정작 경무대라는 공간의 성격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궁궐 후원 연구자인 정우진 박사는 “후원(後苑)이라고 하면 단순히 임금의 놀이터나 휴식 공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경무대는 궁궐 내전(內殿)과 동떨어진 뒷동산이 아니라 과거 시험과 군사 훈련이 열리고 농경 기능까지 갖춘 국가 정사(政事)의 핵심 장소이자 백성과의 소통 창구였다”고 했다.
◇청와대 터가 금단의 땅이었다?
경복궁 중건 뒤 제작한 배치도인 ‘북궐도형’을 보면 당시 후원 면적이 약 20만3905㎡. 오운각, 융문당, 융무당, 경농재 등 건물 32동이 있었다. 문무(文武)를 상징하는 융문당·융무당에서는 과거 시험을 치르거나 군사 훈련을 했고, 경농재 주변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밭이 있었으며, 오운각은 휴식 공간이었다. 정우진 박사는 ‘조선시대 궁궐 후원 체제와 운용 양상’ 논문에서 “고종은 창덕궁 후원인 춘당대(春塘臺)를 모방해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바깥에 경무대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경무대라는 이름은 ‘경(慶)복궁 신무(武)문 밖에 위치한 대(臺)’라는 뜻인데, 흥미로운 건 ‘○○대’라는 의미가 경포대처럼 ‘높은 곳에서 조망이 가능한 곳’이라는 원론적 의미가 아니라 조선시대 성종 대부터 궁궐에서 국가 정사를 행하는 핵심 장소에 ‘~대’라는 명칭을 붙이기 시작한다. 경무대는 창덕궁 춘당대의 위상과 기능을 경복궁에 의도적으로 치환해 국가의 대소사를 치르고 군주의 통치권 행사를 위해 마련한 큰 마당이자 과거 시험을 통해 일반인에도 개방된 공간이었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옛 이름을 되살렸고 윤보선 대통령은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靑瓦臺)’라고 이름을 바꾼다. 정 박사는 “임금이 친림해 군사를 사열하고 과거 시험을 치르는 장소에 ‘~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독특한 공간관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제가 대다수 건물을 헐어버리고 1939년 총독 관저를 지으면서 비운의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 남아있는 융문당과 융무당은 엉뚱하게도 전남 영광에 가 있다. 일제가 두 건물을 헐어 용산에 일본인을 위한 사찰 용광사를 짓는 데 사용했는데, 광복 후 원불교에서 두 건물을 인수해 사용하다 2007년 모두 영광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청와대 안팎은 문화재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옮겨 놓은 잘생긴 석조 불상이 있고, 임금의 쉼터로 만든 ‘오운정’,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칠궁’ 등이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정·비지정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해 대략 60여 건의 문화재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편한 쉼터였으면”
청와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화두로 떠올랐다. 문화계·학계 전문가들은 “청와대는 조선의 역사를 품으면서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영욕이 담긴 현대사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만큼 뭘 더 짓거나 변경하지 않으면서 의미를 잘 살리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위원장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최초의 대통령 집무 공간과 관련 유적지를 묶어 미국 독립역사공원으로 조성한 것처럼, 경복궁 후원으로서의 역사성을 잘 드러내면서 20세기에 지은 청와대 건물들까지 아울러서 전체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해 관리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문화재 위원인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왕의 공간이었고, 대통령의 공간이었으니 ‘통치자의 공간’이었다는 연결 고리를 잘 살리면서, 언제든 찾아가 산책할 수 있는 편안한 쉼터로 조성되길 바란다”며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만 열면 바로 청와대와 연결되니 경복궁-청와대-북악산을 연계하는 탐방 코스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인수위 측에선 본관 건물은 대통령기념관, 비서동·경호동 등 부속건물은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는 “최악의 발상 같다. 대통령기념관은 권위주의적인 느낌이 짙고, 박물관·미술관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며 “윤 당선인 취지가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것인 만큼 완전한 시민 친화적 장소로 개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