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가수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듣노라면 너무 슬프고 쓸쓸해서 저에게는 듣기가 주저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그리스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레지스탕스에 지원한 한 청년이 고향에 연인을 두고 전쟁터로 떠났으나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아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한 곡입니다. 러시아, 아니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새삼 전쟁의 비인간성을 생각하며 그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탓입니다. 같은 가수의 노래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를 들으며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만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전쟁이 명분이 있는 전쟁이겠습니까만, 이번 전쟁이야말로 명분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전쟁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이나 나토 가입 시도 등 한 나라의 주권적 선택을 시비하고 자국에 미칠 피해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이지만, 결국은 1990년대 초 소련연방 해체 과정에서 잃은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을 만회하고 옛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하며 푸틴 자신의 장기 집권을 노리는 데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러스트=김영석

그러나 소련연방 해체는 공산주의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인류 공영으로 나아가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당연한 흐름의 결과였습니다. 그로써 동구권을 포함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와 공동 번영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푸틴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셈입니다. 마치 히틀러가 1939년 9월 1일 이웃 나라 폴란드를 침공하며 ‘생활 공간(Lebensraum)’의 확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을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련이었는데, 그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지도자의 헛된 자존심과 욕심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온 세계는 물론 자국 러시아 및 자국민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2011년 9월 말 국무총리로서 우크라이나를 공식 방문하였습니다. 밤 늦게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한류 팬들이 ‘한국 사랑해’ ‘김황식 국무총리님 우크라이나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환영하며 우리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당시 유럽컵 주최를 앞둔 우크라이나는 인프라를 정비하며 택시를 현대자동차로 바꾸고 전동차도 한국산을 도입하고 있었지요. 광활하고 비옥한 농토에도 농업생산력이 낮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과 농업 기술 협력을 희망하였습니다. 삼성전자는 키이우에 연구소를 두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최고 선망의 직장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사회 공익 사업도 활발하게 펼친 덕에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국 기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인적 경험 탓인지 우크라이나에서 전해오는 참상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가족을 피란시키고, 전쟁터로 향하고, 이리저리 밀리며 피란길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희생을 당하는 모습들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입니다. 세계가 단합하여 경제제재 등 러시아를 향한 전쟁 중단의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해 강대국들의 전쟁 도발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 발발 며칠 후, 평소 소식이 뜸한 친구가 문자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 계좌번호였습니다. 이심전심의 따뜻한 소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