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가 애덤 드라이버에게 주문한다. 레몬 껍질 트위스트를 넣은 탱커레이 마티니를 달라고. 애덤 드라이버가 구찌의 상속자였던 마우리치오 구찌, 레이디 가가는 마우리치오가 결혼하게 되는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이 장면을 보고 책에서는 어떻게 묘사되는지 궁금했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책을 찾아보았는데 그 장면은 없었다. 구찌 저택에 가서 클림트 작품을 보고 피카소 그림이냐고 묻는 장면도 없었다. 그녀는 무식하지 않았다. 좀, 우아하지는 않을지라도.
영화에서 묘사되는 파트리치아는 과하다. 전력을 투구해 외모를 가꾸는 데 현대적인 미와는 거리가 있다. 뭐랄까,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짙고 긴, 그래서 작위적인 속눈썹을 붙이고 육감적인 몸매가 강조되는 원색의 원피스를 입고는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식이다. 그리고 교양이 없는 편으로 나오는데 그런 사람답지 않게 상당히 자신감이 있다. 교양 있는 사람 앞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그래서 피카소를 보고 클림트냐고 물으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라고 되돌아보게 할 정도의 야성을 뿜어낸다.
그녀가 마티니를 저렇게 주문하는 걸 보고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1970년대 밀라노에서는 레몬 트위스트를 넣은 마티니가 힙했나?’라고. 내가 알기로 마티니에 레몬 트위스트를 넣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마티니에는 올리브를 넣는다. 그게 ‘룰’이다. 클림트를 보고 피카소냐고 묻는 것처럼 파트리치아의 ‘교양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러건 말건 자신의 길을 가는 파트리치아의 기개(?)를 상징하는 장면이거나.
올리브를 넣는 것만큼이나 마티니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휘젓는 법이다. 마티니는 믹싱 글라스에서 가볍게 저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참고로,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셰이커 안에 재료를 넣고 흔들거나, 믹싱 글라스 안에서 휘젓거나. 마티니는 휘젓는 칵테일이다. 어떤 근엄한 안내자들은 7번 ‘만’ 휘저으라거나, 오른쪽만으로 ‘만’ 돌리라거나, 20초 동안 ‘만’ 섞으라고 쓰기도 한다. 하도 지엄해서 거의 궁궐의 법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젓지 말고 흔들라고 하니, 대단한 파격인 셈이다. 제임스 본드가 바에 앉아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며 마티니를 주문하는 것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마티니 근본주의자들에게 딴지를 거는 게 아니었나 싶다. 마티니는 흔들지 않고 젓는 법이라는 오랜 전통에 대한 반격이랄까.
나는 그가 왜 그랬는지 좀 알 것 같다. 마티니에 대한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질리는 데가 있다. 영화에서 배우들은 분위기를 잡을 때 꼭 마티니를 시키고, 마티니의 맛을 논한다. 좀 지적이거나 좀 세련되게 설정된 화면 속 인물들을 꼭 마티니를 마시고. 이런 말도 상당히 뭐하다. ‘칵테일의 왕은 마티니’같은 말은 대체 뭘까 싶다. 함께 나오는 게 ‘칵테일의 여왕은 맨해튼’인데, ‘소설가들의 소설가’라는 말만큼이나 수상하기 짝이 없는 조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이언 플레밍은 ‘작작들 좀 하지’라며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본드식 마티니, 그러니까 젓지 않고 흔드는 마티니는 마셔본 적 없다. 마티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젓지 말고 흔들어서 마티니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하다. 좀 아무래도 이건… 그렇다. 혼자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이언 플레밍이 쓴 007시리즈에서나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들어 마시는 것이다. 아니면, 저렇게 말하면 잠시나마 본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시는 귀여운 분들이나.
그렇다. 바에 가서 첫 잔으로 절대 주문하지 않는 게 있다면 마티니와 맨해튼이다. 마티니도, 맨해튼도 맛있게 마셔본 적이 없다. ‘칵테일의 왕’과 ‘칵테일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마티니는 너무 쓰고, 맨해튼은 너무 독하다. 마르가리타나 모스코뮬, 네그로니는 마시자마자 빠져들었는데… 둘 다 뭔지도 모르겠다, 라고 쓰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편에는 있다.
늘 실패하면서도 또 주문하게 된다. 마티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그들처럼 마티니를 좋아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초조함이 드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시키게 된다. 마티니 레시피가 여러 가지인데다 기주(基酒)를 어떤 걸로 하느냐에따라 매우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마티니의 기주인 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파트리치아처럼 탱커레이를 넣을 수도, 비피터, 보타니스트, 고든스, 헨드릭스, 봄베이 사파이어를 넣을 수도 있다.
마티니는 진과 드라이 베르무트를 섞는 칵테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이 베르무트의 비율을 줄여왔다. 처음에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2:1이나 1:1이었다고 한다. 스위트 베르무트였다. 여기에 시럽과 비터스와 문제의 레몬 껍질 트위스트를 넣었다. 1800년대의 레시피다. 1900년대로 들어오며 스위트 베르무트가 드라이 베르무트로 바뀌고,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2:1이나 3:1이 된다. 1930년대에는 5:1이 되고, 1950년대에는 8:1이 된다. 심지어 8:0이 되게 공헌하신 분들도 계신다.
진으로만 마티니를 만들고, 앞에 베르무트 병을 가만히 놓아달라고 하신 분은 처칠로 기억한다. 또 어떤 분은 한술 더 떠 진만으로 마티니를 만들고, 그걸 베르무트가 있는 방향으로 잠시 돌린 후 달라고 하셨다 들었다. 루스벨트로 기억한다. 워낙 버전이 많아 다른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나도 질 수 없다’며 술꾼들이 말을 보태고 보태 여기까지 마티니가 떠밀려 온 게 아닌가 싶다. 잘난 체의 향연이랄까. 마티니에 대한 ‘썰’들은 하도 많아 계속해서 풀 수도 있지만 그만하기로 한다. 말하는 나도 지루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니 이야기는 이거다. 위키백과에서 본 완벽한 마티니를 만드는 법이라는 건데, 적어보겠다. “1. 진, 베르무트, 올리브를 쓰레기통에 붓는다. 2. 위스키를 마신다.” 이거 보고 좀 웃었다.
지난번에 처칠에 대해 쓰면서 그의 고양이 이름이 조크였다고 썼다. 다른 고양이 이름으로 ‘마멀레이드’와 ‘위스키’가 있다는 것도 알려드린다. 어찌나 상큼한지! 아, 그리고 조크는 처칠이 죽은 이후에도 유족들과 살다가 후손을 남겼다고 들었다. 조크의 후손들은 조크 2세, 조크 3세, 조크 4세로 불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훈훈하거나 재미있거나. 아니면 상큼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