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중환자실’로 불리는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SMICU)를 고안한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임상부교수가 서울대병원에 주차된 대형 특수 구급차 앞에 섰다.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 ‘채송화’와 똑같은 서울대 의대 99학번 출신인 노 교수는 “첫 인터뷰라 화장을 좀 하려고 했더니 막상 집에 화장품이 하나도 없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인구 970만의 수도 서울에서는 하루 평균 16건의 심정지, 104건의 중증외상, 88건의 심혈관 응급환자가 발생한다. 하루에만 200여 명이 급작스레 생사의 기로에 빠지는 것이다.

이들이 의지할 건 구급차와 병원뿐.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도 안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10명 중 1명은 제대로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없거나 병상이 없어 다시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기 때문. 중환자의 생사가 도로 위에서 갈리기도 한다. 구급차에 위중 환자를 즉각 처치할 장비가 부족하거나, 제대로 치료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외상 환자의 65%는 도로 위에서 상태가 악화됐다.

여기에 당돌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의사가 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노영선(43) 임상부교수다. “중환자들은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굉장히 위험해요. 그런데 급하게 옮기기만 바빴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중환자실을 통째로 구급차로 옮겨가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국회의원, 시의원까지 쫓아다니며 설득해 만든 것이 ‘달리는 중환자실’이다.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SMICU·Seoul Mobile Intensive Care Unit)의 대형특수구급차. 미국과 독일에서 대당 2억원 넘는 예산으로 구입한 대형특수구급차 내부에는 대형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30여 가지 의료장비가 그대로 갖춰져 있다. “일반 구급차와 달리 저를 비롯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환자와 동승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환자 상태를 실시간 체크하고, 상태가 나빠지면 즉각 처치할 수 있으니 병원이 도로 위를 달리는 셈입니다.”

현재 ‘달리는 중환자실’은 전국에 단 2대, 서울에서만 운행한다. 2016년 운행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5000여 명의 위독 중환자를 이송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최전선에 섰다. 서울에서 발생한 위독 코로나 중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이송한 주역이 달리는 중환자실이었다. 일반 구급차에는 없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특수구급차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가치를 알아본 정부는 올해부터 달리는 중환자실 차량을 4대로 늘리기로 했다.

‘응급의학계 이국종’으로도 불리는 노영선 교수를 서울대 의대 학생관 별관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처음이라 집에서 뭐라도 바르고 오려고 했더니, 집에 화장품이 하나도 없더라고요(웃음).”

◇ 중환자실을 통째로 옮겨라!

-’달리는 중환자실’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우리나라 병원 진료 수준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병원으로 오기 전과 오는 과정은 아니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외상 환자의 65%가 이송 중에 상태가 나빠졌고, 특히 혈압이 저하된 쇼크 환자는 90%가 이송 중에 상태가 악화한다.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중환자실을 통째로 옮기면 어떨까’ 생각했고,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해 만든 것이 ‘달리는 중환자실’이다.”

-보통 환자 이송이라고 하면 ‘빠르게’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응급 이송에서 안전하게, 제대로 치료한다는 개념이 빠져 있었다.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중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할 때 일반 응급차에는 인공호흡기가 없다. 산소를 공급해주는 장치가 있긴 한데 환자 스스로 어느 정도 호흡을 할 수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 장치다. 그래서 의료진이 산소 펌프를 눌러가며 환자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달리는 중환자실’은 일반 중환자실에 있는 인공호흡기가 있고, 의사가 곁에서 치료를 한다.”

-그렇게 해서 살린 환자 중에 기억나는 환자가 있나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80대 노인 환자였는데, 가슴 통증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급성 심근경색과 부정맥 진단을 받아 상급종합병원으로 와서 치료해야 했다. 환자를 옮기려는 찰나에 갑자기 심정지가 발생했다. ‘달리는 중환자실’에 있는 기계식 흉부 압박기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면서 병원에 도착했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고 한 달 뒤 건강하게 퇴원했다. ‘달리는 중환자실’을 통해 이송된 중환자를 그러지 않은 중환자와 비교해보니 생존율이 55% 향상됐다.”

-‘달리는 중환자실’이 사고 현장에 직접 출동하지는 않나.

“아직 구급차 수가 적어 병원 간 이송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강에서 투신한 환자를 마주하면 안타깝다. 물에 빠진 분들을 빠르게 구조해서 의사가 바로 기도에 삽관하고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하면 생존율과 생존 후 장애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독일 베를린은 구급차에 CT가 있을 정도로 응급 이송 수준이 높다. 뇌경색이 의심되는 환자는 바로 CT를 찍고 혈관에 약을 주입해 생존율도 높고 회복 후 후유증도 크게 줄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환자도 많이 이송한다고 들었다.

“60% 정도가 코로나 환자다. 생사가 갈리는 위독한 경우라 에크모 장비가 있는 더 큰 병원으로 옮긴다. 이분들도 자가 호흡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달리는 중환자실’을 이용해야 한다. 한번은 코로나 환자를 이송하러 갔더니 담당 의사가 전문 분야가 아닌 탓에 환자가 호흡을 못하는데 기도 삽관을 못해서 인공호흡도 못하고 있더라. ‘환자가 우리를 기다리면서 죽어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런 일이 굉장히 많다.”

-코로나 중환자들에게 보이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서울에서 발생한 위독 코로나 환자를 거의 다 우리가 이송했는데, 그런 분들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받지 않았다. 젊은 환자들은 큰 병원에 옮겨서 에크모 치료를 하면 다시 회복되지만, 고령자들은 힘들게 이송해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접종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미접종 상태에서 코로나에 걸린 분들이 위중해지는 경우가 많고, 그분들이 의료 자원도 많이 소모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의료 자원이 소모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코로나 환자도 많지만 여전히 다른 중환자도 많다는 게 쉽게 망각된다. 코로나 환자용 중환자실이 늘면서 다른 중환자분들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거나 입원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코로나 사태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입원하지 못해 돌아가신 중환자분이 적지 않다. 백신 미접종자가 줄면 이런 문제를 좀 더 풀 여지가 생긴다.”

방호복을 입은 노영선 교수가 코로나 중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코로나 환자 이송용 음압 텐트를 ‘달리는 중환자실’에 싣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재난병원이라도 미리 지었다면…

노 교수는 응급의학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예방의학자다. 국제 보건 전문가로 2009년 대지진이 발생했던 아이티와 카메룬,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의 개발도상국을 찾아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지원하는 재난 대응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최전선에 있는 그는 코로나 방역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오미크론 변이가 퍼지면서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오미크론 변이 자체만 보자면 코로나가 종식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곧 정점을 찍고 나면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감염력은 높은데 치명률은 분명히 낮아졌다. 매일 10만명 넘게 확진되는데 중환자 이송은 델타 변이 때보다 줄어든 게 체감된다.”

-정부의 방역 대책을 두고 전문가들 지적이 많았다.

“정부에 계신 분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재난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재난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준비하는 게 중요하고, 재난이 생기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는, 그 특성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정부는 ‘재난에 대비한다’고 늘 말은 하지만 재난을 대비하는 데 예산을 쓰진 않는다. 우리가 코로나 사태 초반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던 건 사스⋅메르스를 겪으면서 대응 체계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지, 코로나 전에도 우리의 재난 대응 능력은 크지 않았다.”

-병상 부족도 계속 문제가 됐다.

“재난 병원이나 중증 환자만 받는 중증 환자 전담 병원이 미리 마련됐다면 큰 도움 됐을 거다. 재난병원은 평소엔 병실을 비워두고 외래진료나 건강검진센터 등을 하다가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나 대형 사고, 풍수해 재난 등으로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을 때 한꺼번에 수용해 치료하는 병원이다. 2020년에 서울대병원이 정부에 “일단 우리가 재난병원을 지을 테니 이후 운영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했더니 정부는 난색을 표하더라. 예정부지가 있는 해당 지자체도 건립을 반대했다.”

-결국 예산이 문제인가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곧 끝날 텐데’라며 버티더니 중환자가 많아지고 나서야 ‘이제 재난병원 좀 지어달라’고 하더라. 미리 재난병원을 지었으면 중환자 병상을 300병상 가까이 더 확보하고 의료 인력도 미리 육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 예산이 풍족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정책 수립하는 분들이 재난의 특성을 정말 모른다. 달리는 중환자실도 4대로 늘어나는데 ‘나중에 코로나 없으면 4대 어떻게 운영하실 거예요’라는 말을 듣는다. 1대당 1년 운영비가 10억원 정도 되는데, 달리는 중환자실이 매년 살려내는 환자 수를 생각하면 10억원은 절대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노영선 교수가 응급 입원이 필요한 신생아를 이송하기 전 특수구급차 내에 설치된 인큐베이터를 점검하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운동권 의대생, 늦깎이 의학자가 되다

노 교수는 ‘달리는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논문 쓰기에 전념한다. “연구와 논문이 세상에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논문으로 노 교수는 2016년에 발표한 교통사고 관련 논문을 꼽았다.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 2만4000여 명을 분석하니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운전자는 착용한 운전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12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안전벨트 미착용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얼마나 위험한지 처음 입증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는 뒷좌석에 앉은 사람도 안전벨트 착용 여부에 따라 사망 위험이 크게 달라졌다는 결과도 담겼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8년 고속도로 뒷좌석 안전벨트 의무화 조치가 이뤄졌다. 노 교수는 “의학자로서 연구를 통해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껴 뿌듯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가 처음부터 공부벌레였던 건 아니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에는 2년간 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의대 학생회장이었으면,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건가?

“음… 맞는다고 해야겠다(웃음). 돌이켜보면 뚜렷한 신념이 있어서 운동권이 됐던 건 아니었다. 전남 여수 출신이라 지역 정서의 영향도 받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5·18 광주민주항쟁 영향을 받아서인지 학생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원래 활동적인 성격이라 대학 가서도 공부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학생회장까지 됐더라. 학생운동할 때는 꼬박꼬박 데모에 나갔고 전경이랑 대치도 하고 경찰에 연행도 되고 그랬다.”

-원래 사회·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고3 시절에도 입시공부보다 신문 스크랩하는 걸 즐겼다. 원래 수(數)를 좋아해서 서울대 수학과를 가는 게 목표였는데, 재수하고 수능 성적이 잘 나오니 주변에서 의대 진학을 권유하더라. 의사가 된 것도 특별한 소신이나 신념의 결과는 아니었다. 사회·정치적 관심이 있었던 게 예방의학과 응급의학을 하게 된 것에 영향을 준 것 같긴 하다.”

-굳이 응급의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을 진료하는 임시 진료소를 운영하셨는데, 거기 따라가서 봉사 활동을 했다. 그런 분들 도와드리면서 보람을 느꼈고, 활동적인 성격을 감안하니 응급의학 쪽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당시엔 돈이 중요한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응급의학과에서 전공의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병원에 오지 않도록 건강하게 예방하는 일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보건대학원 가서 예방의학을 추가로 공부했다.”

-부모님이 만류하진 않았나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냥 평범하게 자랐고, 아무래도 공무원 집안이다 보니 돈보다는 사회적 공헌과 같은 가치를 더 강조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영향인지 남동생도 행정고시를 보고 지금 산자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스스로를 ‘운동권’이라 생각하는지

“많이 변한 것 같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서는 뭔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학생운동을 하고 학생회장까지 하고 나니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뭔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지역 보건소장이 되어서 ‘내가 맡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내가 확실하게 책임져야겠다’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서울대병원 교수가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건가.

“주변에서 물어보면 ‘학교 때 성적 좋은 친구들은 다 돈 벌러 갔어요’라고 농담한다(웃음).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더라.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부터 죽어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되고 환자를 보고 연구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사회적 책임’이란 말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지금 서울대병원 교수이니 기득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 대신 서울대 의대에 왔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달리는 중환자실’을 하려고 매달렸던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산 지원 받으려고 국회의원, 시의원까지 찾아가니 주변에선 ‘교수가 그런 일까지 하느냐’고도 말하더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다 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의료계에서는 ‘여자 이국종’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국종 선생님은 외상치료체계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사실 나는 그만큼 이슈를 만들거나 공헌을 하지는 못해서 그분과 비교할 순 없지만, 환자들을 더 살리기 위해서라면 필요하면 이국종 선생님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스템을 만들려면 단순히 학문적인 접근만으로는 안 되고 이슈를 만들고 여러 시도를 해야 한다.”

이송 전에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온몸을 감싸는 방호복을 꼭 입는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뒷좌석 안전벨트 의무화’를 끌어내다

노 교수 지인들은 그를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여자 의사 ‘채송화’와 자주 비교한다. 공교롭게도 드라마 주인공 5명과 똑같이 서울대 의대 99학번에 채송화처럼 여전히 싱글이다. 친한 대학 동기 10명 중 유일한 홍일점인 것도 같고, 쉬는 날 제자들에게 논문 지도를 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는 “원래 의학 드라마는 잘 안 보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현실과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 같더라”며 “유연석 배우가 연기한 ‘안정원’ 캐릭터는 좀 비현실적이고, 다른 주인공들은 전부 주변에서 한 명씩 볼 수 있는 의사 캐릭터들”이라며 웃었다. “정경호씨가 연기한 김준완 의사가 제일 와닿았어요. 환자에게 살짝 까칠하지만 속으로는 환자들 걱정하는 모습이 실제 의사들과 비슷하다고 할까.”

-병원 업무를 쉴 땐 뭘 하는지.

“드라마처럼 친구들 만나서 떠드는 정도밖에 없다. ‘잡다구리’라고 대학 친구 10명 모임이 있다. 대학 시절 우르르 몰려다니며 당구도 치고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다들 바빠서 1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다. 음, 채송화처럼 한 번씩 등산은 가는데 성질이 급해서 캠핑하거나 그러진 않고 정상 가서 사진 찍고 후다닥 내려온다(웃음).”

-논문 쓰는 게 취미라던데 사실인가

“다른 사람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주말에는 보통 논문을 쓴다. 전공의 시절에도 이상하게 환자 보는 것보다 논문 쓰는 게 더 재밌더라. 쓸 때는 되게 고통스러운데 또 그게 재밌다. 원래 수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니까 여러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게 재밌는 건지, 역시 좀 이상한가? 하하! 사실 대학 동기 중에 가장 빨리 결혼할 줄 알았는데 논문 쓰고 공부하다 보니 아직 결혼을 안 했다. 지금은 ‘나이 먹어서 공부를 시작했고 결혼도 안 하고 공부하는데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를 배웅하러 나온 노영선 교수가 병원 마당에 서 있던 대형특수구급차를 대견한 자식마냥 토닥토닥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 들였던 사회적 투자를 되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끔 해요.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큰 그림은 없지만, 선택해야 할 크고 작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려고 합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