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안병현

항간에 좋지 않은 식품이라는 말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아직도 사시사철 단맛의 톡 쏘는 청량음료를 즐긴다. 술을 못하는 금주가에게 목이 탈 때 들이켜는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식도를 따끔거리게 하는 쾌감을 대신하고, 과식으로 배가 더부룩할 때 가스가 트림을 유도하니 체증이 가시면서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공연한 핑계이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코가 찡하면서 가슴이 시원한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거다.

건강을 생각하라는 식구들 성화에 잠시 마음이 움츠러들어 아내에게 견물생심이니 앞으로는 절대 단 음료수를 사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큰소리를 탕탕 치지만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음료수 칸이 텅 비어 있으면 적잖이 섭섭하다. “여보, 마실 게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지.” 하루가 멀다고 사내대장부의 변덕이 죽 끓듯 하니 무던한 아내도 남편의 속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하곤 한다.

당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지적에 다이어트 음료를 마셔 보지만 기대한 맛이 아니고, 전해질을 보충해 준다는 스포츠음료는 맛이 찝찔해 취향에서 벗어나고, 설탕이 안 들어간 순수 탄산수는 담백해도 왠지 2 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뿌루퉁해 있는 서방님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안방마님은 다시 냉장고 안을 각종 음료수로 채우고 의지가 박약한 남편은 엷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다시금 병뚜껑을 따지 않을 재주가 없다. 여기저기 치아가 허물어져 수시로 치과 문턱을 넘나들고 아랫배는 슬슬 맹꽁이를 닮아가고 있으니 두말없이 단맛의 탄산음료를 멀리해야 마땅한데도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오늘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있다.

아주 어려서 경험했던 ‘시날코’(독일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입되어 판매된 탄산음료)가 기억에 어렴풋한데 본격적으로 탄산음료를 접한 건 초등학교 소풍 때 어머니께서 륙색에 넣어주시던 사이다였다. 배낭 속에 사이다가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는데 아까워서 차마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방에 숨어서 몰래 혼자 마시려고 병을 땄는데, 아뿔싸! 미처 손쓸 겨를 없이 거품이 용솟음쳐 사이다의 반 이상이 넘쳐 버렸을 때 코피를 쏟은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었던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가지각색 먹거리가 장사진을 치고 어린 학생들을 유혹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구수한 번데기, 곧게 편 안전핀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해삼과 멍게, 포근하고 달콤한 핑크빛 솜사탕, 양은솥으로 한가득 삶아내는 비릿한 고둥,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달고나와 뽑기,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사랑받는 국민 음식 떡볶이 등이 호시탐탐 코 묻은 돈을 잔뜩 노리고 포진해 있었다. 초여름에 접어들면 형형색색의 색소를 뿌려 먹는 빙수, 나무통 속 얼음 소금물에 든 아이스케이크,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냉차가 대열에 가세했다.

어린 마음에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까마는 가진 돈이 없고 학교가 파하면 한눈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할 배포가 부족했다. 더구나 길거리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못이 박히게 듣던 터였다.

꽤 더운 여름날 삼각 비닐봉지에 담긴 음료 때문에 어머니와의 약속이 깨지고 말았다. 다른 먹거리는 그런대로 참겠는데 왠지 모르게 새콤달콤해 보이는 주스가 정말 마시고 싶었다. 무엇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오렌지색 음료를 쭉쭉 빨아 먹었는데 뼛속까지 시원했던 당시의 경험은 황홀했다. 보지 않고도 귀신처럼 자식의 일탈을 집어내시는 어머니의 신통력에 짐짓 속이 켕겼으나 다행히(?) 알아차리지 못하셨고 엄중한 경고 말씀과 달리 설사도 하지 않았다.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의 계산된 의도인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실수인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사람들은 몸에 안 좋은 음식은 공연히 더 먹고 싶고,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쉽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더운 흰쌀밥은 밥만 먹어도 입속에 단맛이 도는데 거무튀튀한 잡곡밥을 씹으면 혀가 깔깔하다. 멸치 국물의 잔치국수나 수제비의 맛이 구수해도 치즈가 듬뿍 들어간 스파게티나 라면이 먼저 생각난다. 간식거리인 찐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보다 달콤한 케이크나 초콜릿, 짭짤한 스낵에 눈길이 더 간다. 냉장고 속의 보리차가 제아무리 시원해도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끄윽 하고 한바탕 긴 트림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탄수화물, 동물성 기름이나 열량이 높은 먹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다가도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몇 남지 않은 낙(樂)인 식욕까지 억눌러야 하냐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연륜이 쌓이면서 마음과 행동이 순리에 따라 거침이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소한 것에 더 집착하게 되니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소인의 굴레를 벗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내가 탄산음료 대신에 내놓는 시원한 생수를 마셔 보지만 원하는 맛이 아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서 아내를 구워삶지?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에 이른 나이의, 평생 남의 건강을 챙기던 의사가 자신의 건강 관리를 망각한 채 엉뚱한 꾀를 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