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어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이자 흑해 연안에 자리한 요충지라는 특성 탓에 역사적으로 주변국의 외침을 자주 받았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한반도도 비슷했다. 지정학적 요인은 특정 국가·지역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우주에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지정학적 요충지가 있다. 온통 암흑뿐인 우주에 지정학이라니. 우주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천체에서 나오는 중력의 상호작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우주에서 일종의 지형을 만들어낸다. 우주에는 주변 천체의 중력이 상쇄돼 연료를 적게 사용할 수 있는 ‘명당’이 있다. 지리를 활용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결정적인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정학의 핵심 원칙은 우주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바로 우주판 지정학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12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되는 지점인 라그랑주 점으로 우주 망원경 제임스웹을 보냈다. /NASA
사진은 오는 8월 발사돼 라그랑주 점을 지나 달에 가는 한국 달 궤도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 지정학이 처음 부각된 분야는 인공위성이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은 지구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지구 상공 400㎞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의 경우 하루에 지구를 16번 돌지만, 고도를 높여 3만6000㎞ 정도가 되면 위성이 하루에 딱 한 바퀴 돈다. 위성의 공전주기, 지구의 자전주기와 같아지는 이 정지 궤도의 위성을 지상에서 보면 마치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이점 때문에 앞다퉈 정지 궤도에 통신 및 정보, 감시·정찰 위성을 배치한다.

최근엔 이런 우주 지정학이 달보다 더 먼 곳으로 위성·우주 탐사선을 보내는 ‘심(深)우주’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우주로 가는 탐사선은 태양 중력에 따라 비행 경로와 위치가 달라지는데 그때마다 연료를 사용해 위치를 보정해야 한다. 연료를 다 쓰면 위성의 위치를 제어할 수 없고 이는 위성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때문에 심우주 탐사가 늘어난 최근 들어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뤄 사실상 ‘무중력 상태’에 놓이는 ‘라그랑주 점(點)’이 중요해지고 있다. 위성·탐사선에 미치는 중력이 거의 없어지는 곳인데 이를 처음 예측한 이탈리아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의 이름을 딴 용어다. 라그랑주 점에서 우주선은 적은 연료 소모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어 수명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다. 또 이 지점에서 위성이나 탐사선이 출발하면 적은 에너지로도 방향 전환을 하거나 높은 비행 속도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주요 우주 강국들은 우주 지정학적 요충지인 라그랑주 점 선점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1995년 합작 개발한 태양 관측 위성 소호(SOHO)를 지구와 태양 사이 라그랑주 점을 향해 발사했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는 두 별의 중력이 상쇄되는 라그랑주 점이 총 5곳 있는데 이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L1(태양으로부터 150만㎞)이라는 지점에 보낸 것이다. 이 위성은 태양과 지구 사이 한 지점에 고정된 채 지구와 같은 주기로 태양을 돌면서 태양을 관측하고 있다.

L1은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로 달에 가는 데에도 활용된다. 오는 8월 발사 예정인 한국의 첫 달 궤도선(가칭 KPLO)도 L1을 거쳐 달로 간다. 빠른 속도로 지구 중력을 벗어난 궤도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특정 구간에서 감속해야 한다. KPLO는 달을 향해 직선거리로 가는 대신 L1을 찍고 우회함으로써 속도를 줄이고 달로 방향을 전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달을 향해 가는 기간이 4개월로 늘었지만, 이를 통해 연료 무게를 줄여 궤도선 전체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12월에 발사한 역대 최대 규모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을 지구-태양 사이 또다른 라그랑주 점인 L2로 보냈다. 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 안쪽에 위치한 L1과 달리 L2는 지구 공전 궤도 바깥에 있다. 위치로 보면 ‘태양-L1-지구-L2′ 순으로 놓여 있는 것이다. L2 지점에선 태양 빛의 방해 없이 심우주를 관찰할 수 있다.

지구 기준으로 태양 반대편에 있는 L3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아직 인류가 보낸 위성은 없지만, 태양의 뒤편을 항시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구 공전 궤도 부근에 위치한 L4와 L5는 위성이 궤도를 벗어났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힘이 L1~3 보다 강해 일정한 위치를 유지해야 하는 우주정거장의 명당으로 여겨진다. ‘지구-태양’뿐 아니라 지구와 달 사이의 라그랑주 점도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은 2019년 달 뒷면에 보낸 무인탐사선 창어4호가 찍은 사진을 지구와 달 사이의 라그랑주 점에 띄운 통신 중계 위성을 통해 지구로 전송한 바 있다.

우주 탐사가 늘어날수록 우주지정학은 국가 안보와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드넓은 우주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중력지형이 만들어 내는 전략요충지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주지정학의 관점에서 전략적 지점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활용해 우주 영역을 활용할 능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