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 절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다. ‘그 절이 왜 거기에?’라는 생각이 든다면, 백석 시인의 연인 김영한 보살이 지은 절을 아는 사람이겠다. 김영한이 법정스님에게 간청해 만든, 서울 성북구의 그 절 말이다. 그런데 왜 사이판에 있는 절 이름도 길상사일까.
사이판 길상사는 도로변에 있었다. 나무 현판에 노란색으로 한자명이 적혀 있었다. 사천왕상, 천왕문이 없는 것도 성북구 길상사와 같다. 대웅전 오르는 길 중턱에 이르자 누군가 외쳤다. “어떻게 오셨어요?” 작은 체구에 강단 있어 보이는 한국인 비구니였다. 그는 텃밭에서 직접 기른 사과와 칼라만시를 수확하는 중이었다.
비구니는 흔쾌히 요사채로 안내했다. “어떻게 여기서 절을 짓고 사십니까?” 비구니가 자기 소개를 했다. 1961년생이지만 이름은 밝힐 수 없고, 부모 중 한 사람은 일본인이지만 제주에 정착해 그를 낳았다고 했다. 서울 길상사와는 어떤 관계냐 물었다. “한국의 길상사는 송광사 말사이지만, 저는 직지사 말사 출신이지요. 길할 길(吉)에 상서로울 상(祥). 뜻도 좋지만 영어로 발음하기에도 좋아서 따왔지요(웃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김천에 있는 수도암에서 비구니가 됐다. 이미 승려가 됐지만 석가모니처럼 수행이 필요하다 여겨 절을 떠났다. 사이판을 처음 방문한 건 2002년 겨울, 지금 자리에 절을 짓기 시작한 건 종교인 영주권을 받은 2009년이다. “왜 하필 사이판에 오게 됐는지는 불가사의예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여기에 터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일본에 징용된 조선인들이 사이판에서 많이 죽었잖아요. 절터도 사탕수수 농장 농민들이 머물던 숙소였습니다. 제 삶을 다 살지 못한 서글픔을 달래드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비구니는 13년째 도량을 열고 있다. 절에는 사이판 거주 한국인들이 종종 찾아온다. 남들에게 말 못 하는 자녀 문제나 직장 고민을 터놓기 위해서다. 상담이 끝나면 텃밭에서 기르는 바나나와 귤, 오크라(채소)를 마음껏 가져가게 한다. “다들 근심 덜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저도 좋지요.”
불청객도 있다. 중국 관광객이 찾아와 난동을 피우기도 하고, 원주민들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항의해 경찰을 부른 적도 있다. “그래도 사람보다 무서운 건 제 마음 상태예요. 외로운 마음이 들 땐 강아지에게 의존하죠. 이 조그마한 강아지 이름이 ‘타이거’랍니다(웃음).”
사이판 길상사는 대웅전과 요사채 두 건물로 이뤄져 있다. 불상과 식탁, 이부자리가 전부다. “짐이 뭐 필요하겠어요. 그래도 미래에 누가 와서 살지 모르니 깔끔하게 지내야죠. 사람은 미래의 인연을 보고 살아가니까. 과거를 붙잡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