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세종시 보람동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20대 대선 후보들의 선거 벽보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누가 대통령 될 상인가.

‘3초의 예술’이라는 대선 포스터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주 전국 8만4880여 곳에 제20대 대선 후보들의 벽보가 나란히 붙었다. 얼굴 표정과 사진 위치, 색깔과 문구 하나도 고도의 전략. 가로 52㎝, 세로 76㎝의 포스터 한 장에서 승패가 갈린다. 어떤 후보의 포스터가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디자인·광고·포스터·사진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인 박시영씨는 “1번부터 4번까지 공통점은 그냥 ‘너싱(nothing)’이다. 디자인이라는 걸 아예 안 했다”며 “보통 대선 포스터는 당의 상징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이번엔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제외하면 모두 약속한 듯 색깔을 뺐다. 당을 지우고 개인을 내세운 게 이번 대선 벽보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벽보는 흰 배경에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는 얼굴을 담았다.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은 ‘위기에 강한!’이라는 문구에만 썼고, 이름 석 자와 기호 1번 숫자를 다른 후보보다 크게 넣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벽보는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얼굴 사진보다 위에 배치했다. 상징색인 붉은색은 기호 2번 숫자에만 넣었고, 다른 후보에 비해 얼굴 사진과 기호, 이름 크기가 작게 배치됐다.

영화 ‘관상’ ‘광해, 왕이 된 남자’ ‘베테랑’ ‘곡성’ 등의 포스터를 만든 박씨는 “윤 후보의 벽보는 인물보다 메시지를 강조했지만, 옛날 불조심 포스터를 보는 것 같은 시대착오적 배치”라며 “두 줄짜리 문장이 인물 위로 올라가 있어 화면이 이분할돼 결국 메시지에도 눈이 안 가고, 사진도 안 보인다. 대선 벽보는 나란히 붙여놓는 방식이라는 걸 고려했어야 했는데, 혼자만 아래로 꺼져 있다”고 혹평했다.

반면 여미영 스튜디오 디쓰리 대표는 “의도적으로 단차를 내려 눈높이를 낮추고 이름도 작게 넣어 인물의 편안함과 겸손함을 표현하려고 했을 수 있다. ‘국민이 키운…’이라는 텍스트 아래 인물을 배치한 건 국민 아래에 있겠다는 태도를 표현하려는 장치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씨는 “선거 포스터의 시각적인 힘은 명시성”이라며 “명시성 싸움만 보면 단연 이재명 후보의 압승이다. 얼굴 크기와 눈의 높이,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대비, 후보 이름과 기호의 선명함 등 주어진 공간 어느 한 군데 허투루 쓴 구석이 없어 ‘일 잘하는 후보’라는 메시지에 전력으로 집중한다”고 꼽았다. 반면 박시영씨는 “너무 소심한 디자인”이라며 “두루두루 모나지 않고 사람 좋게 보이려고 애쓴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에선 손을 번쩍 치켜든 사진으로 기존 포스터 문법을 파괴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이번엔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 활짝 웃는 대신 미소만 머금어 강한 인상을 주는 전략을 썼지만,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씨는 “의도는 알겠으나 경직된 느낌이고, 턱 밑이 너무 어둡고 명암이 세서 사진의 완성도도 아쉽다”며 “‘과학 경제 강국’ ‘바르고 깨끗한’이라는 텍스트도 사진의 강인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박시영씨는 “오렌지색 글씨의 명도·채도, 인물 왼쪽에 놓인 텍스트의 위치 등 전반적으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선거 포스터라 해도 믿을 만큼 촌스럽다”고 했고, 김상훈 전 광고학회장도 “세로 쓰기는 요즘 포스터엔 잘 쓰지 않는다. 글자 위치도 얼굴 왼쪽에 있어서 시각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벽보에 대해선 반응이 엇갈렸다. 심 후보는 당색인 노란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기후위기 극복을 상징하는 녹색 옷을 입었다. 신수진씨는 “노란색과 녹색이라는 핵심 컬러를 강하게 써서 역동적인 미래 지향적 느낌을 냈다”고 했고, 유지원씨는 “산뜻한 노란색이 전체 포스터 중 확실히 다른 색채감을 드러내고, ‘복지’라는 공약에도 색다른 힘이 실린다”고 평가했다. 반면 박시영씨는 “심 후보는 여러 번 대선에 도전한 후보인데 변화가 없다.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졸업 안 하고 계속 학교에 남아있는 인물 같은 이미지라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