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너무 예뻐서 그냥 구매했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 정신 차리지 못하고 그 후에 점점 더 빠져서···.”
지난 25일 유튜버 겸 인플루언서 프리지아(본명 송지아)가 최근 불거진 가품 논란에 대해 밝힌 사과문의 일부다. 송지아는 지난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에 출연하면서 유튜브 구독자가 50만명에서 190만명으로 급등하는 등 단박에 연예계 샛별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인 명품이 일부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면서 급기야 활동 정지 수순에 이르게 됐다.
명품 브랜드 제품을 홍보하는 영상에도 짝퉁 가방을 들고 나온 송지아의 모습은 개인의 일탈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짝퉁에 무감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송지아 기사에 ‘짝퉁 한번 안 사본 사람 있느냐’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일 터. 온라인상엔 ‘모티프’ ‘스타일(st)’ ‘레플리카’ 등의 이름으로 대놓고 명품을 베낀 디자인이 넘쳐나고, ‘특 S급’ ‘미러급’ 등으로 더욱 교묘해진 짝퉁이 판을 친다. 관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적발된 짝퉁 명품 가방 수는 1866건, 합계 금액은 4670억원에 달한다. 물론 적발된 가방만 이렇다 보니, 실제 가품 시장 규모는 최소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은 왜, 짝퉁에 빠져드는 걸까.
◇나도 모르게 짝퉁 구매자 돼
힌트는 송지아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처음엔 짝퉁인 줄 모르고 예뻐서 구매했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지하철 매대부터 온라인 쇼핑몰까지 도처에 가품이 널려 있다. 직장인 이모(32)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예쁘다는 생각에 샌들을 구매했는데, 지인이 ‘네 건 모양이 좀 다르네’라고 해서 해당 제품이 유명 명품 브랜드의 대표적인 샌들 디자인임을 알았다”며 “나도 모르게 짝퉁 구매자가 돼 부끄러웠다”고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예 남을 속이고자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짝퉁도 살 수 있다. 특히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개인 간 거래하는 소셜 커머스가 확대되면서 짝퉁 시장은 더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이들은 짝퉁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미러급, 1:1 정품퀄, 특 S급 같은 표현을 쓴다. 9년 동안 ‘정품퀄 상품’만 취급해왔다는 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어(구독자)가 1만명에 달한다. 백화점에서 760만원 상당에 판매되는 샤넬 가방이 이곳에선 80만원. “주위 사람들이 이 귀한 걸 어찌 구했느냐고 부러워한다” “친구가 5년 단골인데 여태 속여서 미안하다고 소개해줬다” 등 실구매자 후기가 넘쳐난다. 80만원 주고 짝퉁을 사는 셈이지만, 구매자들은 진품의 10분의 1 가격으로 샀으니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한다.
◇젊은 층에 인기 끄는 ‘명품 하울’
송지아의 두 번째 말에도 주목해보자. 명품을 구매했더니,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줬다는 것. 최근 2030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로 ‘명품 하울(haul·끌다)’이 있다.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세게 끌어올리듯,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이를 품평하는 내용을 찍은 영상을 말한다. 송지아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명품 하울이었다. 명품 선호야 항상 있었지만, 특히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 현상이 더욱 심화한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명품을 온라인상에 많이 공개할수록, 인기가 높아진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특정 브랜드의 대표 가방 정도로 부를 과시할 수 있었다면, 최근엔 옷·신발 등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이런 분위기가 코로나에도 명품 브랜드의 실적을 견고하게 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명품 사랑은 지난해 발란·트렌비·머스트잇 등 온라인 명품 플랫폼 시장을 급성장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1000만원짜리 짝퉁도 있다
짝퉁 구매가 돈 없는 젊은 층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2020년 10월 1억1000만원짜리 에르메스 짝퉁 가방을 1300만원에 판매해 서울본부세관에서 붙잡힌 남매는 여러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짝퉁의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다는 것, 이를 구매한 사람들이 의사⋅대학교수 등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전문직이거나 부유층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이 소형차 한 대 값을 주고 짝퉁을 산 이유는 해당 제품이 VIP에게만 판매하는 등 구매가 까다롭고, 대기가 길어 돈이 있어도 사기가 어렵기 때문. 특히 구하기 어려운 컬러나 소재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A씨는 해당 브랜드 제품을 진품과 가품 모두 가지고 있다. A씨는 “해당 제품을 든다는 건 단순히 그 물건을 산다는 의미를 넘어서, VIP라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며 “이미 진품을 가진 사람들도 특수한 컬러 등은 S급 가품으로 구입해 섞어서 들기도 한다”고 했다.
◇처벌은 불가능한가?
부실한 처벌도 가품 시장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행 상표법 제230조는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의 침해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 처벌이 집행유예나 벌금 수준에 그치는 데다, 위조품 판매 수익보다 추징금이 낮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 부유층을 대상으로 에르메스 가품을 판매했던 남매는 짝퉁 판매로 얻은 소득으로 포르셰·벤츠 등 고급 외제차 3대를 소유하는 등 초호화 생활을 했다고 서울세관은 전했다.
위조품 판매자만 처벌 대상이고 구매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대표변호사는 “국내 상표법은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한 것을 양도 또는 인도할 목적으로 전시·수출하는 행위들에 대해서만 상표권 침해 행위로 본다”며 “자신이 소비하기 위해서 짝퉁을 구매한 경우는 처벌이 어렵다”고 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가품 구매자도 엄하게 처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