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가까이 쇳물을 뽑아온 포스코 1고로(高爐·용광로)는 가동 중단을 앞두고도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다. 직원들도 “고로의 불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산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① 포스코 1제선공장 직원이 방열복을 입은 채 쇳물을 점검하고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출선(出銑·쇳물이 나옴) 시작됩니다!”

지난 21일 오후 경북 포항 포스코 1제선공장. 은색 방열복을 입은 남자들의 우렁찬 소리가 공장 내부에 메아리쳤다. 90m높이 고로(高爐·용광로) 하단부의 직경 5㎝ 크기 출선구에서 ‘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나오더니, 이내 화산이 분출하듯 시뻘건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철광석·코크스(석탄)와 같은 단단한 광석들이 섭씨 1500도가 넘는 고로 안에서 8시간 이상 연소되며 만들어진 쇳물이었다. 쇳물이 나오는 출선구에 가까이 가자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몸을 덮쳤다. 직원들도 작업복이 흠뻑 젖은 채 고로 주변에서 쇳물 상태를 점검했다. 김수만 1제선공장 파트장은 “1고로는 이달 말 가동이 중단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쇳물을 생산할 계획”이라며 “수십년을 씨름해온 고로와 작별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장성한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심경”이라고 했다.

② 쇳물에서 나오는 불꽃과 열기를 막기 위해 출선구 주변을 덮개로 막고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최장수 현대식 고로이자 전 세계에서 최장 기간 조업 중인 포스코의 ‘포항 1고로’가 오는 29일 종풍(終風·고로가 수명을 다해 쇳물 생산을 마치는 과정)식을 갖고 은퇴한다. 1973년 6월 9일, 이 땅에 첫 쇳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지 48년 6개월 만에 가동을 멈추는 것이다. 1고로는 50년 가까이 한국 제철 산업과 중공업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이달까지 총 5500만톤의 쇳물을 생산했는데, 이는 중형 자동차 5500만대, 냉장고 11억3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도 이 기간에 연간 조강 생산량 3594만톤(지난해 기준)을 자랑하는 세계 6위 철강사로 성장했다. 정기준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교수는 “대한민국은 중공업을 시작으로 주요 제조 분야를 석권하며 50년 만에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며 “포항 1고로가 바로 그 기적 같은 변화를 이끈 시작점”이라고 했다.

◇ 철강 강국 이끈 ‘민족 고로’

③ 쇳물 출선구를 밀봉하는 모습./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④ 쇳물 생산을 책임지는 제선부 직원들이 한데 모여 포즈를 취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고로는 쇳물 생산을 중단하는 종풍 행사를 1주일여 앞둔 이날에도 쇳물 생산 작업에 한창이었다. 입구에는 첫 출하 당시 임직원이 기뻐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민족 고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포스코가 운영하는 전체 9개 고로 중 1고로에만 유일하게 붙는 수식어다.

첫 쇳물이 나오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1고로에서 첫 쇳물이 출하되던 당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이 태양열로 채화된 불로 처음 용광로에 점화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각이 한참 지나도록 쇳물이 나오지 않자 박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가슴을 졸인 채 기다려야 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첫 쇳물이 쏟아지자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1고로 설립 당시 1제선공장에서 근무했던 안덕주(83)씨는 “당시 현장 사진에서 박 회장님 표정이 담담해보이는 것도 너무나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쇳물이 나오는 순간을 보고 허탈해졌기 때문”이라며 “많은 직원이 쇳물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실패하면 모두 포항 앞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1989년 입사 이후 30년 넘게 1고로에서만 근무한 박병진(51) 주임은 “포항의 자랑이자, 포스코의 심장인 1고로와 함께한 것만으로 큰 자랑이고 영광”이라고 했다.

1고로는 사람으로 치면 평균수명 3배 이상 세월을 살아왔다. 고로는 내부에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지피기까지 반년이 걸리기 때문에 항상 뜨거운 열기 속에 가동돼야 한다. 이 때문에 고로의 평균수명은 15년을 넘기기 어렵다. 포스코는 1979년과 1993년 두 차례 개보수를 거쳐 50년 가까이 1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철강 기술이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드문 사례다. 1고로는 반세기 세월 동안 생산 장비가 현대화되면서 공장 직원 수는 3분의 1로 줄어든 반면, 전체 공정의 생산 수율은 더 좋아졌다. 지난 2018년엔 1고로에서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아 버려졌던 저가 광석을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전체 고로 중 가장 낮은 생산 원가를 달성했다. 보수 작업에만 수천억원이 들어간 1고로가 지금까지 현역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혁신을 거듭하며 한국 철강의 중흥기를 이끈 1고로도 ‘탄소 중립’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제철은 전 산업을 통틀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아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포스코의 넷제로 정책에 따라 은퇴를 결정했다. 28일 자정을 기해 1고로의 불을 끄고, 쇳물 생산을 중단한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내부 쇳물을 제거하고 안전 진단과 전기 설비를 비롯한 각종 시설 정비 공사를 거쳐 철강역사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 다시 조명받는 ‘박태준 리더십’

학계와 철강 업계에선 1고로 가동 중단을 계기로 올해 타계 10주기를 맞은 박태준 회장을 다시 조명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서점가에는 박태준 리더십을 분석한 책과 평전이 20권 넘게 나왔다. 경영학 전문가들은 박태준을 두고 “강력한 추진력과 또렷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자기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박태준은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자금 조달부터 1고로 착·준공, 쇳물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소 건립에 사용한다는 계획을 처음 세운 이가 박태준이었다. “한국이 무슨 철강을 만드느냐”는 해외 기업들의 비아냥과 국내의 따가운 여론 속에서도 당시 대일 청구권 자금 8000억원 중 1200억원을 제철소 조성과 1고로 건립에 사용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용의 3배 규모다.

1969년에는 포항시 대잠동에 영빈관(현재 영일대호텔)을 짓고 이곳에서 숙식하면서 제철보국의 꿈을 키웠다. 공장 건설에 앞서 직원용 아파트를 먼저 짓고, 각종 처우 개선에 신경 쓸 정도로 직원 복지를 중요시했지만 생산 현장에선 누구보다 엄격했다. 직원들이 박 회장이 공장에 나타나면 사이렌을 울리고 긴장해야 했다. 박 회장은 제철소 건립 당시 직원들에게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립 실패는 죄 짓는 일”이라며 “건설에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다. 당시 박 회장과 함께 동고동락한 직원들은 “일 하나만큼은 철두철미했던 분”이라고 기억한다. 1고로가 첫 쇳물을 쏟아내던 날 그를 비롯한 건설 주역들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지금까지 한국 철강사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 1고로에서 첫 쇳물이 나온 6월 9일을 ‘철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식을 여는데 이날 받는 각종 산업훈장은 모든 철강 종사자에게 최고의 영예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박 회장은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밀어붙여 고도 성장기에 필요한 리더십을 보인 동시에 철강 생산으로 번 돈을 R&D(연구⋅개발)와 후학 양성(포스텍 건립)에 재투자하는 혁신과 공감의 리더십도 보였다. 백기복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박태준 회장은 세간에 불도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사람과 조직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간 새로운 리더십의 경지를 보여준 인물”이라며 “진화하는 그의 실용적인 리더십은 기업인뿐 아니라 대선을 앞둔 지금의 유력 정치 지도자도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