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나무 화분은 연말이면 플라워숍·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높은 상품 중 하나다.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플라워숍 ‘아미화’ 강현미 대표는 “전체적 모양이 균형 잡힌 원뿔형인 데다, 잎의 앞면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은백색으로 아름답다”며 “가지가 튼튼해 무거운 장식을 매달아도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향하는 방울도 귀엽다. 향기도 선선하고 상쾌해 플라스틱 재질 인조 크리스마스트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한 구상나무 화분./아미화

한국에서뿐만 아니다. 한국 자생종 구상나무는 전 세계적으로도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사랑받는 나무다. 구상나무는 101년 전인 1920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당시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은 ‘아널드 식물원 연구 보고집’ 1권 3호에 ‘한국에서 온 신종 침엽수 4가지’란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윌슨은 “이 전나무 신종은 이번 한국에서 발견된 신종 중에서 가장 흥미롭다. 구상나무는 매우 잘생긴 나무다”라고 평가했다.

윌슨에 따르면, 구상나무 표본을 채집해 해외로 반출한 건 프랑스 식물학자인 위르뱅 포리 신부다. 포리 신부가 1907년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은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 식물원에 보관돼 있었다. 윌슨은 이 표본을 보고 구상나무가 기존 학계 보고된 나무와 다른 새로운 종이라고 결론 내렸고, ‘아비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라는 학명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영어 이름은 ‘코리안 퍼(Korean fir)’이다.

윌슨의 학계 발표 이후 구상나무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개량·판매되고 있는 구상나무는 90품종 이상으로 미국·캐나다·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의 종묘사 98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 고유종 구상나무에 대한 주권은 한국에 있지만, 개량해 특허를 따로 등록한 구상나무 품종 특허권은 개발해 등록한 개인이나 기관이 갖는다.

하늘을 향해 달리는 구상나무 방울./국립생물자원관

소나뭇과 전나무속 상록수인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 1000m 이상에 분포한다. 특히 한라산 구상나무는 해발 1300m 이상 바람이 거센 지대에 살기 때문에 다른 지역 구상나무보다 키가 작고 가지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구상나무라는 이름은 제주도 방언 ‘쿠살낭’에서 유래했다.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라는 뜻으로, 잎이 가지에 달린 모양이 성게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구상나무를 보려고 일부러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는 유럽 관광객도 있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올해 크리스마스트리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구상나무 개량 품종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국크리스마스트리협회(NCTA)는 올여름 폭염으로 미국 북서부에서 생산되는 크리스마스트리 중 10%가 손상됐다고 최근 밝혔다. 묘목은 더 심한 피해를 입어서 70% 정도가 폭염으로 죽었다. 구상나무 등 침엽수는 온도에 특히 민감해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전 세계 크리스마스트리의 ‘시조(始祖)’랄 수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도 개체 수가 40%가량 급감했다. 한라산에 올라가면 집단 고사(枯死)해 허옇게 마르거나 부러져 나뒹구는 구상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미 2013년 국내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이러다간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만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우려가 세계적으로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