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메타버스 가상공간 '폴리버스 캠프'(위 사진)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온라인 플랫폼 '재명이네 마을'. /인터넷 캡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자인 회사원 송모(34)씨는 요즘 ‘재명이네 마을’에 들르는 것이 취미가 됐다. 송씨는 8일 오전 ‘사진관’에 들러 다른 지지자들이 올린 사진을 감상하고, ‘커피숍’에 들러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송씨는 “오프라인에선 정치 관련 대화를 하기 쉽지 않은데,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대선이 90일 가까이 남은 가운데, 후보 간 경쟁은 온라인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은 각 후보 진영이 온라인 플랫폼,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선거전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하려 하는 점이 눈에 띈다. ‘재명이네 마을’은 이재명 후보 측이 지난 2일 개설한 온라인 소통 플랫폼이다. 마을 사진관엔 지지자들이 만든 사진·영상 콘텐츠가 올라오고, 주민센터는 이 후보 측이 공약을 올리는 게시판, 파출소는 가짜 뉴스 신고센터다. 커피숍은 이 후보에게 하고 싶은 말과 질문 등을 누구나 올릴 수 있는 자유 게시판. 커피숍 방문자는 25만명을 넘어섰다. ‘말씀을 신중히 해달라’ ‘페미니즘에 대한 후보의 생각을 묻는다’ 등 요청과 질문 글이 쇄도하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과 응원도 넘쳐난다. 상대 후보를 인신공격하는 내용의 글과 사진도 올라와, 일부 이용자 사이에선 ‘자제해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민주당 선대위 측은 커피숍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후보가 직접 답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16일 ‘폴리버스 캠프’를 열었다. 폴리버스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 공간으로, 국민광장, 프레스센터, 민원센터 등의 코너가 있다. 누구나 접속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폴리버스 안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앞서 안 후보는 국민광장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청년 공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원센터에는 ‘게임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 좋다’는 감상평부터 ‘단일화 프레임에 걸려들지 말라’ ‘늙어 보이니 방송 화장을 하지 말라’는 요청, ‘백번을 생각해도 찰스(안 후보)가 답이다’ 등의 응원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생각발전소에서는 O·X 퀴즈를 풀 수 있는데, 퀴즈 중 ‘전과 4범도 전 세계에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문제는 이재명 후보를 저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7일 저녁에는 폴리버스에서 안 후보 지지자 60여 명이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안 후보 영상을 함께 보고, 돌아가며 지지 발언을 했다. 노래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이재명 후보의 지역 방문 프로젝트인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언급하며 “진짜 메타버스는 이곳(폴리버스)”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6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AI 윤석열’을 깜짝 등장시켰다. 빨간색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AI 윤석열은 “안녕하세요. AI 윤석열입니다. 윤석열 후보와 너무 많이 닮아 놀라셨습니까”란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AI 윤석열은 윤 후보의 외양과 목소리를 똑같이 갖췄는데, 딥러닝(신경망 학습)을 통해 윤 후보의 영상을 학습하고 이를 구현했다고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했다. 하버드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프로그래머 출신 이준석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전국에 전광판을 부착한 유세 차량을 보내, AI 윤석열의 영상을 동시 송출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을 준비 중이다. 윤 후보 측은 또 정책을 개발하고 알리는 데 업무 협업 툴 ‘노션’과 온라인 개방형 사전 플랫폼 ‘나무위키’ 등을 활용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만든 플랫폼인 ‘청년의꿈’도 인기다. ‘청년의 고민에 홍준표가 답하다’는 의미의 코너 ‘청문홍답’에는 1만건 가까운 질문이 올라왔다. 홍 의원은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것이냐’는 질문에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인생 살며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가 올린 ‘왜 청년들은 홍준표 의원님을 좋아하고 열광할까요?’란 질문에 홍 의원은 ‘저도 잘 몰라요. 다만 진심으로 대하고 거짓말 안 하고 공감하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앞서 민주당 이낙연 예비후보, 국민의힘 원희룡 예비후보 등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캠프를 개설한 바 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 캠프는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2016년 때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 캠프는 증강현실(AR)게임 ‘포켓몬 고’를 활용해 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IT에 친숙한 2030세대를 겨냥한 것으로, 여기에 후보자가 첨단 기술과 가깝다는 진취적인 이미지를 얻기 위한 전략도 더해졌다”며 “그러나 실제 표심을 얻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