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 30년 먹고 산 것도 ‘스펙’인지, 가끔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글을 맛있게 쓰는 비결’인데요, 곰곰이 생각하다 혼자 정리해본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밸런스 게임’ 흉내를 내자면, 우선 ‘영화 보기’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쓸 가능성이 큽니다. 화면은 대사와 함께 훅훅 지나가서 ‘생각하고 곱씹어볼’ 겨를이 없는데, 책이란 녀석은 활자와 씨름하며 줄 긋고, 메모하고, 되돌아가 다시 읽는 동안 단어들이 뇌리에 와서 박혔다가 생각으로 무르익고 감성으로 곰삭으면서 내 안에 체화되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둘째는 비문학보다 문학, 외국 문학보다 우리 문학 즐겨 읽기입니다. 장르 불문하고 글쓰기에는 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고, 아무래도 번역체보다 우리말, 우리 어법으로 이뤄진 문장들이 도움이 될 테니까요. 글이 엉키고 잘 안 써질 때 저는 20세기 한국 단편소설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고(寶庫)이자, 해학과 풍자의 산실이며, 이야기의 만듦새까지 한번에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죠.
셋째, 읽기보다 쓰기, 그중에서도 묘사입니다. 일종의 실전인데요. 어떤 사진 한 장, 풍경화 한 장을 글로 묘사해보는 겁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조향사가 자신이 만든 향수의 냄새를 맡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상으로는 3초면 끝날 행위를 작가는 한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묘사하지요. 그러고 보면 글쓰기란 어떤 상황, 혹은 장면을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나가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튼, 주말>과 전신인 <Why?>에 게재된 주옥같은 인터뷰들 중,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특별한 감동을 준 기사가 있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인터뷰입니다. 8년 전, 65세였던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는 듯, 그녀의 표정과 말투, 급하고도 화끈한 성정까지 적나라하게 그려낸 명(名)인터뷰였죠. 이번 주 뉴스레터로 배달합니다. 아래 QR코드를 찍거나, 인터넷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으로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더불어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탈출! B9면 ‘OTT로 달라진 관람법’ 기사를 읽다가 ‘빈지뷰잉’이란 말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폭식하듯 드라마 몰아보기’에 저도 중독돼 있었더군요. 요즘 글이 잘 안 써진다 했더니, 넷플에 빠져 책을 멀리한 탓입니다. 별 감동도 없이 뱃살과 편두통만 남는 넷플 보기로 금쪽같은 주말을 무참히 날려버리지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