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 출시 이후, 디즈니 플러스로 '겨울왕국'을 보고 있는 아이. /최현정씨 제공

“육아는 디즈니!” “디즈니 어린이집 개장했습니다!”

지난 12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가 공개되자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섯 살 딸을 키우는 최현정(35)씨는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출시만을 기다려왔다. 딸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1·2편을 보고, 최씨도 픽사 영화 ‘코코’와 고전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주말을 보냈다. 그는 “넷플릭스는 어른을 위한 콘텐츠가 대부분이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제한적이었다”면서 “디즈니 플러스는 첫 화면만 봐도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많고, 시청 연령도 손쉽게 설정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이후에는 볼 만한 작품이 없어 해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까지 국내 시장에 상륙하면서 OTT 대전이 시작된 가운데 디즈니 바람이 예상보다 거셀 조짐이다. 오랜 시간 검증된 탄탄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청자를 빠르게 확보하는 중이다. 2019년 출범 이후, 1년 반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넷플릭스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지만 영국 가디언지는 디즈니 플러스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고 “3년 안에 넷플릭스는 세계 1위 OTT 자리를 디즈니에 뺏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내에서 고조되는 반(反)넷플릭스 정서도 심상치 않다. ‘오징어 게임’ 흥행으로 올해 3분기 유료 가입자가 438만 명 증가하며 전 세계 누적 가입자 수 2억1360만명을 기록한 넷플릭스가 18일 한국 서비스 구독료를 전격 인상하면서 기름을 뿌렸다. 스탠다드 요금제는 월 1만2000원에서 1만3500원으로, 프리미엄은 월 1만45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17.2%나 올랐다. 망 사용료 미지급, 오징어 게임 흥행 수익 배분 문제가 불거진 데다 구독료까지 기습 인상하면서 구독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19금, 29금 콘텐츠가 많은 것도 문제다. 실제로 지난달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선 청소년 관람 불가인 ‘오징어 게임’의 유행을 언급하며 “학생들이 연령제한 등급 기준에 맞지 않는 미디어를 보지 않도록 지도해달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3세, 7세 아이를 키우는 사진사 김상현(40)씨는 “넷플릭스는 아이용 콘텐츠조차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들이 나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면서 “디즈니는 검증된 콘텐츠가 많고, 아이들을 위한 더빙이 잘돼 있다. 아이와 있을 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혼자서는 마블 영화를 본다”고 했다.

1990년대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디즈니

◇부활한 디즈니 만화동산

아이들뿐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매주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며 컸던 젊은 세대도 디즈니 고객으로 합류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인스타그램 계정이 ‘디즈니와 함께한 순간을 공유해달라’고 하자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겠다며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랑 투닥거리며 싸웠던 기억이 난다””학교 갈 땐 못 일어나도 일요일 아침엔 귀신같이 눈이 떠졌다” 등 저마다 추억을 공유하는 댓글이 달렸다. 회사원 강모(30)씨는 요즘 디즈니 플러스로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돌려보고 있다. 강씨는 “어렸을 때 동심으로 봤던 애니메이션인데 나이 들어서 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면서 “복잡한 현실을 잊고 순수했던 시절,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기분”이라고 했다.

충성도 높은 디즈니 팬들은 디즈니 콘텐츠에는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마케터 김준민(31)씨는 “넷플릭스는 작품 수는 많지만 볼만한 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디즈니는 콘텐츠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고 했다. “저는 어렸을 때 봤던 ‘알라딘’과 ‘라이온킹’부터 보고 있어요.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콘텐츠를 볼 때마다 집중하고 봐야 하는 피로감이 있었는데, 한 번 봤던 애니메이션은 생각 없이 틀어놓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마블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비전'. /디즈니+

◇콘텐츠 믿고 서비스는 엉망?

디즈니플러스에는 디즈니뿐 아니라 픽사·마블·스타워즈·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브랜드가 모여 있다. 마블 영화광이라는 이계현(40)씨는 3일에 걸쳐 마블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 비전’ ‘로키’ ‘팔콘 앤 윈터솔져’를 정주행하고, 아버지와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인 ‘고래의 비밀’을 함께 시청했다. 이씨는 “역대 마블 영화를 시간순으로 보기 좋게 정리해놔서 새로운 팬도 유입될 것 같다”면서 “TV로 연결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4K 다큐멘터리를 고화질로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막강한 콘텐츠의 힘은 보여줬으나 한국어 자막이나 한국어가 어눌한 고객상담센터 등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쏟아지고 있다. 콘텐츠만 믿고 서비스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 “성에 함께 가시지 않을래요?”라는 올라프의 질문을 “가랑이를 함께해요?”라고 번역하거나, ‘토이 스토리’에서 버즈가 스페인어를 쓰는 장면에서 번역하지 않고 스페인어 발음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등 엉터리 번역이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됐다.

넷플릭스가 OTT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디즈니 플러스가 자사 콘텐츠의 팬이 아닌 일반 시청자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는 플랫폼 회사로 출발해 유럽·아시아·남미 등 현지 제작사와 협업해 만든 신규 콘텐츠를 플랫폼 위에 얹는 방식으로 성장했고, 디즈니는 콘텐츠 회사로 출발해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디즈니도 신규 콘텐츠를 내놓을 텐데, 결국 ‘오징어 게임’ 같은 메가 히트작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넷플릭스가 앞서지만 1위를 지킬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