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만 내면 뭐 한대냐. 나는 구두 속까지 닦아줘. 40년 넘게 앉아 있으니 대통령이고 국무총리고 한번은 왔다 가불지.”
서울 종로 낙원동의 탑골공원 맞은편에는 41년째 구두를 닦는 정순덕(82) 할머니가 있다. 맨몸으로 시작해 파라솔과 이사용 박스, 그리고 한 평짜리 컨테이너로 옮겨가며 지금껏 자리를 지켰다. 하필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여기 사람들 얼매나 씀씀이가 좋은지, 80년대에 1000원짜리 어묵을 고민도 안 하고 그냥 묵어”라고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정씨를 찾아온 손님은 줄을 서야 겨우 구두를 닦았다. 하지만 점차 손님이 줄어, 지금은 구두 닦을 사람을 찾아 사무실을 전전해도 한두 켤레 쥐고 돌아오는 게 다반사다.
거리의 구두 수선공이 사라진다. 구두를 닦거나 수선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다. 서울시 허가를 받아 정해진 시설 내에서 영업해야 하며, 도로 점용료와 시설물 대부료를 낸다. 서울의 구두 수선대는 2017년 1075개에서 올해 926개로, 4년 만에 14% 감소했다. 정장에도 편한 운동화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구두를 신는 사람도 고쳐 신기보단 차라리 새로 사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이렇게 바뀐 세태는 구두공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난 15일 서울 낙원동, 여의도동, 성수동에서 40년 이상 구두를 닦아온 세 사람을 만났다.
◇구두닦이 50원 하던 시절…현재는 4000원
여의도에서 구두를 닦는 김모(60)씨의 구둣방은 담배 연기와 달군 구두약 냄새로 가득했다. 그는 ‘H 빌딩 앞 구두 아저씨’로 유명하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른 곳에선 못 고치는 낡은 구두를 저렴하게 새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면서다. 소문을 듣고 단골이 된 손님들 덕에 하루에 적어도 한두 켤레씩 받는다. “내가 열일곱 살부터 구두를 닦았어요. 공항에서 승무원 구두 닦고, 사우나 앞에서도 닦고. 그러다 식당을 열었는데 1년도 안 돼 망했지. 배운 게 없으니 다시 구두 닦는 거야. 집사람은 내가 다시 구두 닦는지 몰라….”
“형님, 오늘은 스페샬로 닦아줘.” 김씨를 찾아온 단골 장모(53)씨가 신던 구두를 벗으며 말했다. 구두를 받아든 김씨는 헝겊을 손에 감아 짙은 갈색 구두약을 묻혔다. 빠통(나무로 된 수선대) 위에서 구두를 닦고, 가스버너로 구두를 달궈가며 광을 냈다. 마무리는 맨손가락에 약을 묻혀 닦는다. 김씨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구두 한 켤레 닦는 데 50원. 세월이 흘러 이제는 4000원이 됐다. 장씨가 “왜 나는 만날 천 원 깎아주냐”고 묻자 김씨는 “백수한테 돈 받아 뭐 하겠나”라고 답했다.
수선공 박창수(69)씨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보도 위 영업시설물이 아닌 ‘구두선생’이라는 상호로 가게를 낸 구두공이다. 55년째 구두를 고치며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흥망을 함께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신발 하면 구두, 구두 하면 성수동 수제화 거리였지. 중국으로 신발 제조공장 넘어가 버린 뒤로는 수선 일 하려는 젊은 사람이 없어. 종일 해봐야 벌이도 안 되니 다 떠나는 거야.”
◇ 盧대통령에게 ‘누나’로 불린 구두공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인근에 있는 정순덕 할머니의 구두 손님 중에는 유명인도 많았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부터 모 헌법재판관까지 오랜 그의 단골이다. 1988년 여름에는 검정 승용차 한 대에서 단신의 남성이 성큼성큼 정씨 앞으로 걸어왔다.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구두를 닦으며 땀 흘리는 정씨를 보고 노 전 대통령의 보좌관은 200mL 흰 우유를 사 와 건넸다. 그 뒤로도 정씨를 몇 번 찾아온 노 전 대통령은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라며 친근하게 대했다. “구두만 봐도 그 사람 됨됨이를 알지. 막 신은 구두 주인들은 수더분해. 예민하지 않으니 속에 먼지도 그득 쌓이고 굽이랑 옆 가죽이 다 해져있지.”
손짓 몸짓 동원했던 글로벌 손님도 있었다. 13년 전 한국말을 못 하는 프랑스 손님이 정씨를 찾아왔다. 손님 양말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정씨는 기워줄 테니 벗으라는 시늉을 했다. 정씨가 꿰맨 양말을 건네자 프랑스인은 감사의 의미로 대뜸 정씨 이마에 입을 갖다 댔다. “벌떡 일어나 이마에 탁 뽀뽀를 하더라고. 놀라 자빠질 뻔했지.”
성수동 구두공 박씨는 작년 말 군화 한 켤레를 의뢰받았다.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군화였는데, 옆에 지퍼를 달아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서욱 국방장관의 부탁이었다. “20년도 넘어 보이는 신발이었는데, 고쳐 신겠다는 걸 보고 마음가짐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지. 통화로 어떻게 고쳐달라는 건지 설명을 듣고서 수선했었지.”
◇“닦을 바에야 새로 하나 산다”
싸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 신발까지 영향을 미치자, 자연히 구두를 닦는 사람도 줄었다. 신발 제조와 유통을 일괄하는 SPA 국내 브랜드 중 하나인 ‘슈펜’은 론칭 6년 만에 연 매출 1600억원을 넘겼다. 이렇게 매년 신발을 포함한 의류가 6000만t 이상 만들어지지만 70%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간다.
구두공 김씨는 여의도 직장가 한가운데서 일하며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그는 “구두 가죽의 두께나 재질을 보면 이 구두가 명품인지 아닌지 안다”며 “절반은 금방 해지고 슬리퍼 가죽보다 못한 재질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박씨도 “음식은 비싼 것 먹고 건강 챙기면서, 정작 하루 종일 몸을 지탱하는 신발은 가볍게 신고 툭 던져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한의류수선리폼종사자협회 이영춘 대표는 “25년 동안 의류를 만들어도 보고 수선도 해봤지만, 최근에는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중년들도 싸게 사서 낡으면 버리고 새로 사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정장엔 구두’가 옛말이라니
“요즘에는 정장에도 구두 말고 편한 신발을 신잖아. 길 가다 운동화 신은 사람을 보면 속상하다니까. 우리 같은 수선공들은 운동화 신은 사람이 미워.”
코로나로 재택 업무가 늘고, 정장에도 구두보다 운동화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재택근무 일상화로 캐주얼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2030세대가 주도하는 운동화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작년 신발 품목별 시장 규모를 보면 구두(정장용, 캐주얼)의 구매율은 12.6%, 운동화 구매율은 32.9%로 운동화가 구두의 2배 이상이었다.
구두수선 일을 하려는 청년 유입 없이, 기존 수선공이 고령화하는 것도 구두수선공들이 사라지는 이유다. 정씨는 “내가 벌써 여든인데, 나 죽고 나면 이 일을 받아서 할 사람도 없고, 길 가다 들른 손님도 전부 50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서울시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된 200여 곳의 구두 수선대를 정비하고 있다.
◇정 할머니 구둣방은 사랑방이 됐다
도로 위 구두 수선대는 보도상 영업시설물로 서울시가 관리한다. 올해 기준 서울시 내 구두 수선대는 총 926곳. 많이 위치한 지역은 중구(107곳), 강남(93곳), 영등포(62곳) 순이다. 수선대의 영업 권한은 특례지원제도를 통해 주로 노숙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게 제공된다. 이들은 토지 공시지가에 따라 도로 점용료를 내고, 대부한 기간만큼 540만원 또는 690만원 상당의 시설물 금액을 나눠 낸다.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구에서 신청받아 시에서 관리하므로 불법 노점과는 다르다”라며 “영업자의 자산이 일정액 이상일 경우에는 허가가 취소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씨의 구둣방은 이제 동네 사랑방이 됐다. 수선 도구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피믹스 상자와 누룽지, 라디오가 놓여있다. “손님이 없는데 누가 구둣방 문을 두드리겄어. 내가 동네 사람들 모아야지. 라디오도 이제 지겨워. 청소부고 배달부고 전부 차 한 잔 주고 시간 보내는 거지. 오죽하면 지나가는 노숙인한테 ‘아이고 박사, 날 추운데 차 한 잔 하지’ 말하고 그래. 다 나한티 온 손님이라 생각하고 베풀 거여(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