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찬 바람 부는 어느 늦가을 오후. 노모(老母) 홀로 사는 시골집에 기별도 없이 딸이 찾아옵니다. 서울로 대학 가 남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해 서울 남자와 결혼한 이쁘고 똑똑한 딸입니다. 갑작스러운 딸의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엄마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사위랑 싸웠나, 직장에서 잘렸나, 시어른들께 꾸지람을 들었나….

모처럼 만나 좋으면서도 별것 아닌 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여느 집 모녀와 똑같습니다. 보일러비 아끼려고 냉골에 전기장판을 켜고 자는 엄마, 자기가 버리고 간 옷을 입고 사는 엄마의 궁상이 딸은 못마땅합니다. 엄마도 섭섭합니다. 살면서 단 한 번을 “응, 엄마” 하며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고, 말끝마다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 하면서 눈 흘기는 딸이 밉습니다.

그러나 야속한 마음도 잠시. 마르고 꺼칠한 모습으로 잠든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늙은 엄마는 탄식합니다. “대체 무슨 근심이 있능 겨. 뭐길래 이 엄마한테도 말을 못 하고 끙끙대능 겨. 니가 입만 달싹해도 뭔 생각 허는지 다 아는디. 그게 뭣이든 내가 다 품어줄 것인디.”

아주 오랜만에 연극을 보았습니다. 28일까지 이화여대에서 공연하는 ‘친정엄마와 2박 3일’. 2009년 초연해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함께 ‘엄마 신드롬’을 일으키며 무려 80만명이 관람했다는 히트작입니다.

연극을 보니 흥행의 이유, 알 수 있었습니다. 신파로 흐를, 빤한 이야기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힘은 올해 여든인 배우 강부자씨에게서 나오더군요. 사투리로 이뤄진 저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소화했을까. 1시간 40분,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고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연륜과 집념에 경외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2017년 5월 <Why?> 인터뷰에 따르면, 무대 위 그의 몸짓 말투 표정은 모두 어머니를 따라 한 것이라고 했더군요. 꽃무늬 요란한 ‘몸뻬’ 바지부터 머릿수건까지 직접 장만한다는 그입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은 ‘대배우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는 듯하여 하마터면 일어나 손뼉을 칠 뻔했습니다.

이번 주 아주말 뉴스레터에는 4년 전 강부자 인터뷰를 함께 배달합니다. 지난주 소개한 박세리 선수가 인터뷰 후 출출해 찾아간 맛집도 소개했으니 꼭 열어보세요. 아래 QR코드나 인터넷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통해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그나저나 겨울이 오기 전, 친정엄마와 함께 저도 사진 한 장 찍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