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오랫동안 아몬티야도(Amontillado)라는 술은 환상의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 ‘바베트의 만찬’에서 아몬티야도는 너무나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잠깐 이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인이 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되는데, 이 돈 모두를 한 끼 식사에 쓴다. 캐비아와 바다거북 수프 같은 음식으로 12인분의 정찬을 차려내며 같이 내는 술도 만만치 않다. 1846년산 클로 부조 와인과 1860년산 뵈브 클리코 샴페인이 나오고, 식전주로 나오는 것이 아몬티야도다. 참고로 이 소설의 배경은 1880년대다.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바베트의 만찬’ 중 등장인물들이 식사하는 모습. 노르디스크 필름

이 정찬의 귀빈 중 하나인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한 남자는 이 술을 마시고 깜짝 놀란다. 아몬티야도를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마신 아몬티야도 중에서도 최상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몬티야도가 식전주라는 것을, 또 귀한 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고, 이 소설에 나오는 음식과 술을 한 번이라도 먹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시고 싶던 것이 아몬티야도였다. 아마도 ‘아몬티야도’라고 신비하게 울리는 발성이 한몫해 아몬티야도에 신비의 베일을 드리웠던 듯하다.

며칠 전, 그 아몬티야도를 선물로 받았다. ‘바베트의 만찬’에 나오는 술이니 내가 좋아할 것 같았다며. 감동했다. 그는 내가 이 작품을 당연히 알고 당연히 아몬티야도를 특별히 생각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안다. 그도 이 작품을 보고 아몬티야도가 얼마나 마시고 싶었을지를. 우리 같은 사람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미지의 음식들, 그 미지의 단어들을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링곤베리, 그예토스트 치즈, 칼바도스, 자허토르테… 이런 것들 말이다.

전에 한번 마셔보기는 했다. 너무 싼 걸 사서 그런지 별맛이 없었다. 셰리주가 익숙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별로였다. 나는 음식과 술에 관한한 무한히 열려 있는 편이라 처음 먹는 것이나 기피 식재료일 수 있는 것들도 꺼리지 않는데 말이다. 그 아몬티야도가 맛이 없던 게 확실하다.

아몬티야도는 셰리주의 일종이다. 셰리주는 스페인의 주정 강화 와인인데, 드라이하고 약 맛이 난다. 셰리주에 대해서도 일말의 환상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기로 한다. 대항해 시대의 이야기다. 셰리주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마젤란의 함대에 대량으로 실려 세계를 일주했던 술이다. 황금의 땅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은 셰리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고. 셰리주는 바람이 불든 파도가 치든 배 위에서 출렁이며 대서양과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물결을 경험했을 것이다.

셰리주의 셰리가 헤레스(Jerez)에서 왔다는 것도 내 마음을 끈다. 헤레스가 뭔지 아는가? 무려 시저, 혹은 카이사르라고도 불리는 그 남자의 이름을 라틴어로 쓴 것이다. 셰리주가 만들어지는 마을의 이름이 헤레스데라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인데 ‘변경에 있는 시저의 마을’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헤레스의 옛 이름인 세레스(Xerez)가 변해 영어식 표현인 셰리(Sherry)가 된 것이라고. 재미있는 것은, 셰리의 한 갈래인 아몬티야도는 스페인식 발음이라는 점이다. 영어식 발음으로는 아몬틸라도다.

이걸 아는 것은 에드거 앨런 포 때문이다. 그도 아몬티야도로 소설을 썼다. 제목에 아예 아몬티야도가 들어간다. 원제로는 ‘The Cask of Amontillado’. 어쩌다 보니 이 소설을 번역한 판본 네 개를 갖고 있는데 번역이 다 다르다. ‘아몬틸라도의 술통’ ‘아몬틸라도 술통’ ‘아몬티야도 술통’ 이렇게 제각각이다. 거대한 아몬티야도 술통을 산 남자가 그게 정말 아몬티야도가 맞는지 감식해달라며 다른 남자를 부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불려온 남자는 그 자리에 없는 제3의 남자를 씹는데, 그가 아몬티야도와 셰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셰리가 아몬티야도라고 우길 놈이라고 하며.

나는 여기가 아주 으스스하다. 아몬티야도는 셰리주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셰리는 크게 피노(Fino)와 올로로소(Oloroso)로 나뉘는데, 피노는 바디감이 가볍고 색도 연하고, 올로로소는 피노보다 묵직하고 색도 진하다. 그리고 아몬티야도는 이 둘을 섞은 듯한 스타일이다. 피노도 셰리, 올로로소도 셰리, 아몬티야도도 셰리인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말하는 것은? 셰리가 아몬티야도라고 우길 놈이라고 씹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본인의 감식안을 자랑하는 사람이 말이다. 그 또한 셰리가 뭔지 아몬티야도가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포는 이 남자의 감식안의 실체를 이렇게 보여준다.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이렇게 스윽. 소설에는 어떤 각주도 없어서 나는 이 소설을, 셰리주와 피노와 아몬티야도를 마셔본 후에야 이해했던 것이다.

아, 이 긴 이야기를 그날은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너무 바빴다.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도 먹었고, 이야기는 더 많이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셨지만 술 이야기를 할 틈은 없었다. 선물 받은 아몬티야도도 따고 말았다. 집에 가서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좋지만 맛있는 것을 나누는 게 더 좋으니까. 샴페인을 마시고, 피노누아를 마시고, 부르고뉴를 마시고, 아몬티야도를 열었다.

이게 아몬티야도구나 싶었다. 포트 와인과도 다르고 마데이라(Madeira)와도 달랐다. 나는 포트 와인으로 시작해 마데이라로 건너갔는데, 또 이렇게 아몬티야도로도 건너왔구나 싶었다. 모두 와인에 브랜디를 넣어 도수를 높여 변질을 막는 제법을 쓰는데 맛은 이렇게나 다르다니… 이 아몬티야도는 내가 처음 마셨던 아몬티야도와 달랐다. 드라이하면서 산미가 좋은 피노의 맛에 육중한 올로로소의 맛이 더해져 감칠맛이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약 맛. 내가 마셨던 아몬티야도는 약 맛만 강했다. 또 셰리주를 마실 때는 생각하게 된다. 이건 포도보다 곡류의 맛이 아닐까하고. 구수함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포도에서 이런 맛이 날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아몬티야도를 먼저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몬티야도는 식전주인데 말이다. 얼마나 훌륭한 식전주였으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도 체험해본 남작 부인이기도 하신 이자크 디네센이, 만 프랑을 들인 정찬에서 처음 내는 술로 아몬티야도를 썼을까? 아몬티야도는 식전주고, 식전주의 본분은 식욕을 돋우는 것인데 우리는 술이란 술을 다 먹고 거의 식후주 느낌으로 아몬티야도를 마셨던 것이다….

몇 바퀴를 돈 건가. 몇 사람의 이름과 몇 병의 술을 말했나. 어질어질하다. 알면 알수록 먹고 싶어지고 알면 알수록 마시고 싶어진다. 또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이러니 술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싶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나는 술도 예술의 한 분파로 지정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