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과 그렇게 술을 자주 마셔서 되겠냐고 묻는 사람. 일단, 나는 매일 마시지도, 자주 마시지도 않는다. 그러지 못한다. 다음에는 어떤 술을 마실까 생각한 뒤 술을 사곤 하지만 그저 마련뿐이랄까. 사놓고 따지 못한 술을 보면서 언제 마실 수 있나 한숨짓는다. 매일 마시기에는 해야 할 일도 걱정이고, 내 몸도 걱정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나는 너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 마시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마셔서 되겠냐고 나를 지탄하는 이들은 일단 술과 건강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또 자기가 세운 폭음의 기록을 나열해주신다. 같이 마신 사람은 입술이 터졌는데 본인은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했다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러는 게 좋다. 또, 나는 매일 마시지도 않는데 ‘매일 마신다’라고 질책하며 그러면 몸에 안 좋다고 걱정해주시는 분도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건강이다. 그렇게 마시면 몸에 안 좋지 않아? 술은 안 좋아.
음, 건강. 건강을 유지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건강해야 뭐라도 할 수 있고 뭐라도 하고 싶어지니까. 나만 해도 환절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도, 몸도 위축된다. 그런데 아시나요? 몸의 건강만 건강이 아니라는 걸요. 몸이 안 좋으면 마음도 안 좋지만, 마음이 안 좋아도 몸이 안 좋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신다면 몸에는 좋지만 과연 마음에도 좋을까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한두 잔은 괜찮지 않을까요?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몸에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마음도 북돋울 수 있는 알코올의 양은 얼마일까라고 말이다. 정량이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고, 주종에 따라 다르겠으니 이런 걸 처방해 줄 수 있는 분이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술 약사’ 같은 거 말이다.
술 파는 약국에 간 적이 있다. 베를린에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 게 아니라 지나쳤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너 시 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술집인 것 같은데 왜 약국이라고 하지? 왜 위스키와 약국을 같이 써 놓은 거지? 바텐더가 약사 가운을 입고 있나? 궁금했는데 결국 풀지 못했다. 다시 가지 못했고,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왔으니까.
종종 이 술 파는 약국을 떠올리곤 했다. 어떤 술을 파는지 알아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그러니까 약국의 라인업을. 주전 선수가 무엇이며,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는 무엇인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이제 좀 알 것 같다. 술 파는 약국의 정체를 말이다. 내가 원하던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손님의 체적(?)을 살피고 병증을 물은 후(그러니까 문진이다) 술을 처방한다. 그런데… 과연 술의 양을 제한할까? 그럴 수 있을까? 그걸 잘 모르겠다.
왜 술을 팔면서 약국이라고 썼는지 의아하신 줄로 안다. 일단, 거기는 술집이 맞는다. 그러면 약국이 아닌가? 약국도 맞는다. 이백 년 전쯤의 기준에서라면 말이다. 그때 사람들은 아플 때 술을 마셨다. 러시아에서는 보드카를, 영국에서는 진을 마셨다. 위스키는 원래 ‘생명의 물’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니 말해 무엇 하리. 또 비터스처럼 술들은 당시 그저 약이었다. 약사가 개발했고, 약사가 취급했다. 그랬던 비터스가 이제 칵테일에 쓰인다. 고전적 의미에서 약국, 현대적 의미로는 술집, 이걸 포괄해 ‘술 파는 약국’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몇 년에 걸쳐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술 파는 약국이란 위스키와 비터스와 칵테일을 파는, 과거에는 약이었던 술들을 파는 술집이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약국이 아닌 것도 아니다. 술은 잘만 마시면 약이 되기도 하니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라는 의미에서도 그러하지만 하루에 한 잔 레드와인을 마시면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한국에서는 엄연히 ‘약주’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한약재를 넣어 약주일 수도 있겠지만 ‘이게 약이야’라는 자기 최면이 느껴져서 나는 ‘약주’라는 말이 참 정겹다.
아는 사람 중에서도 건강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매일 흑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서로 아는 사람은 아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다. 그의 주치의는 빈혈기에 대한 약으로 흑맥주를 처방한다. 영양이 풍부할뿐더러 조혈 작용을 한다며 말이다. 또 대학 때 선배 하나는 감기에 걸리면 두꺼비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신다고 했다. 그렇게 마시고서 죽은 것처럼 자다가 일어나면 새로 태어난 것 같다나? 혹시나 해서 ‘두꺼비’란 한 소주 회사의 아이콘이라는 걸 밝혀둔다. 모두 술을 약으로 마시는 경우다.
술 파는 약국을 본 날, 다른 곳에서 200년쯤 전의 약국을 재현해 놓은 걸 봤다. 그곳에서 일한 약사는 독일의 유명 작가 테오도르 폰타네였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인데, 빈 약병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곳이었다. 200년 전에도 술 파는 약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폰타네는 본인의 우울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떤 ‘약’을 처방했을지 궁금하다. 그다지 하고 싶지 않던 약사 일을 하느라 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아프지 않았을 리 없다.
나도 종종 자가 처방을 내리곤 한다. 속이 답답할 때는 황금빛 필스너를, 으슬으슬할 때는 암갈색 코냑을, 기분이 우중충할 때는 산뜻한 릴레 블랑을, 소화가 안 될 때는 씁쓸한 화이트 포트와인을 내준다. 이건 그나마 괜찮을 때다. 속이 쓰릴 때는 페이쇼즈 비터스(Peychaud’s bitters)를, 배가 아플 때는 앙고스투라 비터스(Angostura bitters)를 준다. 먹고 나면 괜찮아진 느낌이 드는데, 과연 이 비터스의 특정 성분이 작용을 한 건지 아니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쳐 몸까지 괜찮아진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플라시보라도 일단 효과가 나면 좋지 않나? 그러니 술이 꼭 몸에 해롭다고만 볼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속상한 일이 있다면 한 잔 드시죠. 약주 한 잔. 약이니까 딱 한 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