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양당들이 간판선수만 교체하는 정권교체는, 구(舊)적폐를 몰아낸 자리에 신(新)적폐가 들어서는 적폐 교대만 반복할 뿐입니다. 이제는 5년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판을 갈아야 할 때입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세 번째 대권 도전이다. 2011년 혜성처럼 등장해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는 2012년·2017년 대선 모두 판을 뒤흔드는 위력을 보였다. 정치 도전 10년 동안 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지만, ‘주류 양당 정치 타파’라는 출마의 변은 변하지 않았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새로운물결)도 출마선언문에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심 후보는 “34년 묵은 낡은 양당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고, 김 전 부총리는 “(양당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언제까지 양당 구조에 중독된 정치판을 지켜만 보겠느냐”고 했다.
◇“어느 대선보다 영향력 클 것”
‘제3 후보’. 안철수·심상정·김동연을 하나로 묶는 이름이다. 주류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 아닌 제3의 세력에서 나온 후보란 의미다. 현재 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당선권과는 거리가 있다. 문화일보·엠브레인이 지난달 29·30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가상 5자 대결 조사에 따르면, 안·심 후보는 각각 6%대, 김 후보는 2~3%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1·2위 후보인 민주·국힘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근소한 차이(2.4~5.8%포인트)를 기록한 점을 봤을 때, 제3 후보들의 지지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선이 박빙으로 진행될 경우 이들이 대선 결과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주류 양당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너무 높고 이들의 지지율이 30%대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5%가량의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는 제3 후보들의 영향력이 역대 어느 대선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민주당·국민의힘, 그리고 양당 후보들을 자유롭게 비판하지만, 이들과의 단일화를 바라는 양당 후보들은 몸을 사리며 구애에 힘쓰고 있다. 김동연 후보의 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참석해 ‘러브콜’을 보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 대해 “안 대표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당연히 야권 통합이라고 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것”이라고 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심상정 후보에 대해 “우리가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국민이 제시해줄 것”이라며 단일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3 후보는 왜 나올까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단순다수제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는 우리나라에서 제3 후보가 선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화 이후 주목받는 제3 후보는 늘 있어왔다. 정주영·박찬종(1992년), 이인제(1997년), 정몽준(2002년), 이회창·문국현·고건(2007년), 안철수(2012년), 안철수·반기문(2017년)…. 이들의 등장은 돌풍을 일으켰다.
제3 후보는 왜 등장할까. 2012년 대선 ‘안철수 현상’을 분석한 논문들에서 정치학자들은 ①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및 기존 주류 정당체제에 대한 거부 ②새로운 인물에 대한 열망과 이를 충족시킨 안철수의 개인 이미지 ③기존 주류 정당 후보들과 대비되는 차별적 포지셔닝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다른 제3 후보들에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제3 후보는 제1지대 또는 제2지대 (주류 양당) 한쪽의 리더십, 후보가 무너졌을 때 등장한다”고 봤다. 박 컨설턴트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라는 강력한 여당 후보에 기존의 야당 후보(문재인)로 대항하는 것이 어렵자 안철수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도층이 두껍고 이들의 표심이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것도 제3후보의 등장 요인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0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자신의 이념성향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7.6%에 달했다.
◇마크롱 신화, 우리는 과연?
그러나 역대 대선에서 제3후보들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대부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지지율이 하락했고 최종적으론 중도 포기하거나, 단일화 대상이 되거나, 낙선하는 결말을 맞았다. 이유는 다양하다. 대중의 기대와 찬사를 받던 제3 후보들이 본격 정치 행보에 나선 뒤 혹독한 공세를 버텨내지 못하는 경우, 주류 양당이 가진 강고한 조직력과 지역 기반 지지세에 밀리는 경우 등이다.
우리나라에선 성공 사례가 없지만, 프랑스에는 있다.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다. 2017년 마크롱의 대선 승리는 대이변이었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주류 양당인 사회당·공화당 소속이 아닌 비주류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대선을 1년 앞두고 마크롱이 창당한 앙마르슈는 당시 의석을 1석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대선은 ‘데가지즘(degagisme·구체제 청산)’ 열망 속에서 치러졌고, 마크롱은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표방했다.
‘한국판 마크롱’이 탄생할 수 있을까. 2017년 프랑스 대선과 이번 우리나라 대선은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염증이 높은 상황에서 치러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결선투표제가 있다는 점, 당시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악이었다는 점, 제1 야당 후보가 부패 스캔들로 추락했다는 점 등에서 우리와 다르다.
김형준 교수는 “유권자들은 새 인물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3 후보가 수권했을 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제3 후보들이 당선권의 큰 지지율을 얻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파괴력은 상당해서, 누군가의 당선을 도울 수도, 누군가의 표를 잠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제3 후보가 성공하려면 주류 양당 리더십(후보)이 동시에 무너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5%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표심이 양당으로 수렴돼 제3 후보 지지율이 쭉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